소설가 조정래 “50년 글 써도… 늘 무능함을 탄식하는 제례를 치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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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와 함께하는 오뚜기 인생]소설가 조정래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으며, 노력 없는 재능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과 같다”며 소설가 조정래는 자신이 그 표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으며, 노력 없는 재능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과 같다”며 소설가 조정래는 자신이 그 표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생활의 달인’이라는 한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호떡 만들기, 자동차 복원, 구두 닦기, 다슬기 채취, 유리공예 등 각양각색의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 기량을 갖춘 달인들의 삶이 감동을 준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오로지 한 분야만을 파고 또 파서, 더이상 팔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중후한 내공(內功)을 쌓았다는 점이다.

달인은 다른 달인을 통해 진한 동지 의식을 느끼는 것일까. 소설가 조정래(72)도 이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기상천외한 신기(神技)를 발휘하는 온갖 직업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직업을 하찮게 여길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람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저마다 존재할 가치가 있고,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한 가지 일은 신을 능가할 만큼 잘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는 게 그 이유다.

물론 그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대상은 소설, 즉 글쓰기다. 집필 7년 만에 완성한 ‘태백산맥’(200자 원고지 1만6500장)과 6년의 연재 끝에 완성한 ‘아리랑’(2만 장), ‘한강’(1만5000장)은 ‘조정래의 한국 현대사 3부작’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1300만 부 이상 팔린 역작이다. 게다가 중국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 ‘정글만리’도 2013년 출간 이후 이미 100쇄를 돌파했고 현재도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다. 그는 무협소설로 치자면 최상승 무공을 익혀 대하소설계에서 한 문파(門派)를 창시한 장문인급 반열에 이미 올라섰다고나 할까.

달인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고난과 위기, 절망과 좌절 같은 뒤안길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 역시 “50년 동안 글을 써오면서도 늘품이라고는 전혀 없이 새 글을 쓸 때마다 절망감에 빠져 스스로의 무능함을 탄식하는 제례 의식을 치른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그 통과의례를 돌파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존경과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가가 되기 위한 연단술(鍊丹術)이란 게 있을까요?


“저는 ‘손자에게 주는 할아버지의 잠언 365’라는 주제로 틈날 때마다 글을 기록해두고 있어요. 그중에 ‘재능을 맹신하는 자가 받는 선물은 필패(必敗)이고, 노력을 신봉하는 자가 받는 선물은 필승(必勝)이다’는 잠언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만든 것이지만 참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10년 단위, 20년 단위, 30년 단위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연단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 핵심은 노력일 겁니다.”

동양 도학(道學)의 사유 체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10년의 내공을 거치지 않은 것은 결국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는 믿음이 있다. 10년의 내공을 닦아야 그 바닥에서 나름 알려진 ‘선수’가 되고 20년 정도 지나면 초심자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새로운 경지에 이른다. 또다시 30년을 채우고 나면 모든 연단(鍊丹) 과정이 끝나 자신만의 여의주(단·丹)를 얻게 된다.

소설가 조정래는 온 몸으로 이 세계를 경험한 듯했다. ‘시간의 법칙’에 예민한 기자의 눈에는 그가 소설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시간의 틀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고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1973년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으로 교단을 떠나게 된 후 오로지 문단 활동과 작품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10년 만인 1983년,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대표작이자 불후의 명작인 ‘태백산맥’을 집필하게 된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인 1953년 최초로 자작 문집을 만든 지 30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제가 30년 전인 불혹의 나이 마흔을 보내면서 ‘내가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내 무덤에 뭐가 남을까’ 점검해 봤어요. 객관적으로 평가해봤더니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그러면 헛산 거 아니야?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되지 하면서 시작한 게 ‘태백산맥’이에요. 그러면서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한강’ 10권을 내리 쓰다보니까 훌쩍 20년 세월이 가버렸지 뭐예요.”

그는 대하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한 20년 세월을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매일 25∼30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이를 감당할 체력이 필요하다. 그는 20년간 매일 16시간을 집필에 몰두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손체조로 건강을 다졌다. 두주불사인 그가 집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외부 인사와의 술을 끊어버려 사람들은 그를 참 지독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가 단 한번도 연재물의 마감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는 사실도 언론계의 전설 중 하나다. 원고지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 오른팔 마비, 위궤양, 탈장 같은 직업병이 빚쟁이처럼 어김없이 찾아왔다.

20년간 수도승 같은 삶은 대하소설의 신경지를 펼치는 결정적 연단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이 단단한 결계(結界)를 풀 수는 없었다. 소설의 내용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고발되고 수시로 걸려오는 협박 전화에 10년간 시달렸지만, 그가 쌓은 ‘20년의 공’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일기 같은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거기에 재능이 있었다는 건데요. 선생님은 재능에 노력을 가미해 오늘의 성취를 이뤘다고 볼 수 있는데, 만일 재능 혹은 적성에 맞지 않는 노력은 헛고생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이유, 즉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걸 언제 깨닫느냐 하는 시기적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게 분명히 재능이 있는 분야예요.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일이 있듯이 저는 글 쓰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시간을 들인 노력이 가미되는 거지요. 저는 ‘삼국지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노력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심중에 돌비석처럼 새겨 넣었지요. 지금도 이런 의지와 결심이 인간적 고통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돼주고 있어요.”

―‘정글만리’ 이후 교육과 연관된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방금 말한 재능이나 적성과 관련된 주제인가요?

“우리나라에서 풀무질로 칼을 만들어 파는 대장장이가 있습니다. 칼을 쓰는 외식업체가 많으니까 수요는 있다 치고, 그 사람이 1년에 얼마 정도나 저금할까요? 기자 양반 한번 맞혀 봐요(기자는 한 달에 기껏 50만 원 저금을 예상하고 1년에 600만 원 정도라고 선심 쓰듯 답했다). 그 사람이 1년에 1억 원을 저금하고 조그마한 빌딩도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데도 장인으로 인정받아 대학교수를 하고 있어요. 대기업 간부인 아버지를 둔 한 젊은이가 대장장이의 칼 만드는 솜씨에 반해 배우려고 하자, 대장장이도 젊은이의 손재간을 알아보고 대신 부모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요.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검사가 되기를 원하던 그 집안에서 난리가 났어요. 젊은이 아버지가 대장장이를 찾아가 왜 아들을 부추기느냐고 따졌어요. 그러자 대장장이는 ‘당신은 일류대학 나와 대기업 간부로 있는데 나처럼 빌딩이 있는가, 1년에 1억 원씩 예금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퇴직 후 무얼 할 것인가?’ 하고 되물었어요. 그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교육 관련 소설이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학벌에 얽매여 출세지향적, 권력지향적인 삶을 성공한 삶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가장 불행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가 강조하는 성공한 인생이란 무얼까. “사람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가 있는 것이고, 인간다운 삶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거기서 행복과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자기 분야에서 장인 의식을 가지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던 중산층 문화가 이미 무너져 버렸다고 그는 진단했다.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중산층이 무너진 사회는 그리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젊은이들에게 재능을 바탕으로 한 장인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중산층 문화를 복원하는 교육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동안 수많은 역작을 내셨는데 조금 쉬었다가 하실 만도 한데요.

“기자 양반, 이것 좀 봐요(그는 서재의 책상 위에다 향후 10년간 해야 할 작업을 기록한 메모지를 신주단지처럼 ‘모셔놓고’ 있었다). 나는 교단에도 서 본 몸이기 때문에 이 일은 싫어도 내가 해야 해요. 나라고 쉬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소.”

그는 현재까지 지은 150여 개의 잠언 중에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서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다’는 육필 글씨를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평생의 경험과 지혜가 농축된 그의 잠언대로라면 그는 80세가 훌쩍 넘어선 나이에도 끝없이 스스로를 연단해 가고 있을 것 같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실제로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살짝 언급했다.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해 아버지가 “물감 값 줄 돈 없어!” 하는 한마디에 그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접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손자를 위한 잠언집을 만들 때는 그림도 선보이겠다며, 맛보기 삼아 직접 그린 인물 캐리커처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그는 새로운 재능 씨앗을 뿌리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림을 보여주며 의기양양해 하는 노소설가의 모습에서 어린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손자에게 주는 할아버지의 잠언 365’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 조정래. 자신이 그린 캐리커처도 등장한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손자에게 주는 할아버지의 잠언 365’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 조정래. 자신이 그린 캐리커처도 등장한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10권짜리 태백산맥 베끼기, 며느리에게 시킨 까닭은?▼

조정래-김초혜 부부의 자식교육법


소설가 조정래는 부인 김초혜 시인과의 사이에 외동아들(도현)을 두고 있다. 그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10권 분량의 ‘태백산맥’을
필사케 한 얘기는 유명하다. 아들은 ‘태백산맥’을 다 베껴 쓴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아리랑’까지 필사했고, 며느리 역시 숙제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아리랑’ 옮겨 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들 내외에게 이런 일을 시킨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분단국이라는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국민으로서 그 멍에와 비극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태백산맥’은 왜 우리 역사를 똑바로 알아야 하는지, 역사에 대한 인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둘째, 지식인으로 살아가려면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쓸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소설을 베끼다 보면 분명히 문장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책을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의 필사가 독해에 더 도움이 된다.
셋째, 이 세상을 살다보면 불의한 일도 많고 불행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모진 세파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가려 볼 줄
알고 처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소설에서는 각양의 인간군이 하늘의 별들처럼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사후 70년간 판권이 자식에게 유산으로 남겨진다. 직접 글을 옮겨 보면서 아비가 어떤 고통과 노력 끝에 번 돈인지를 각인시켜 주어야 허투루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는 필사 교육이 효과를 거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저더러 ‘큰손자가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제가
‘태백산맥’을 베끼면서 태교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하고 아부를 하더라고요. 며느리가 이미 시아비를 다룰 줄 아는 100만
불짜리 처세술을 익힌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습디다”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조정래 김초혜 부부의 아들 교육은
손자 교육으로도 이어진다. 할머니 김초혜는 1년간 손자 재면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편지를 지난해 책(행복이-할머니가
손자에게)으로 엮어 손자의 중학교 입학 기념 선물로 줬다. 그는 편지에서 책만큼 인생을 빛나게 하고 알차게 해주는 것은 없으므로
평생 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말기를 신신당부하고, 이 세상에 가장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인데 할아버지는 바로 그런 분이라고 하면서 할아버지를 본받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365개의 잠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할머니의 손자 사랑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자식 교육은 그의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것이라고 한다. 승려이자 교육자였던 그의 부친(조종현)은 도를 닦듯이 삶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조정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절대 거짓말하지 말라, 올바르게 살아라, 허튼짓 하지 말라, 주색잡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20년간 줄기차게
받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조정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아들도, 손자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대대손손 이어가는 모범적 가정교육 현장이다.

:: 조정래는… ::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아버지 조종현과 어머니 박성순 사이에 4남 4녀 중 넷째(아들로는 차남)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제식민지 종교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시범적인 대처승이었다. 1953년 초등학교 때 최초의 자작 문집을 만들었고, 글짓기대회에서
전교 1등상을 타기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한 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62년 동국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6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대한 후 1967년 시인 김초혜와 결혼했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동구여상과
중경고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단편과 중편 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으로 1973년 교직을 떠나게 된
이후 전업작가로 길을 틀었다.

1976년 최초의 장편소설 ‘대장경’을 완성한 데 이어 1983년에 대하역사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하기 시작하며 작가의 표현대로 20년간 ‘황홀한 글감옥’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1989년 모두 10권의
‘태백산맥’을 완간한 데 이어 이듬해인 1990년 ‘아리랑’ 집필에 들어가 1995년 12권을 완간했다. 또 1998년부터 연재한
‘한강’이 2002년 10권으로 출간됨으로써 그의 대표작인 대하소설 3부작이 완성됐다. 2013년에 출간한 ‘정글만리’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었고 TV 드라마와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또
소설 ‘아리랑’의 배경인 김제시에는 그를 기념하는 ‘아리랑 문학관’도 세워졌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조정래#‘태백산맥#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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