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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배우 김호정 “삭발과 노출신은 숙명적인 죽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

입력 2015-03-26 03:00업데이트 2015-03-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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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개봉 ‘화장’에서 시한부 아내역 열연 김호정
가족위해 희생한 아내의 좌절… 촬영하는 내내 마음이 쓰라려
대감독과 명배우와의 작업 행운… 신인때 초심으로 돌아가 연기
배우 김호정은 영화 ‘화장’을 “삶의 속살”이라 불렀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자부심과 열등감, 그리고 윤리의식과 욕심을 동시에 갖고 산다는 걸 다시금 일깨우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배우는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쪼개서 보여주는 직업입니다. 영화 ‘화장’은 인간에겐 숙명인 죽음과 사랑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죠. 삭발이나 노출은 이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인간적으론 힘들어도 당연히 해야죠.” 다음 달 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은 이래저래 주목도가 높다. 거장 임권택 감독에 원작 소설은 김훈 작가, 거기에 배우 안성기까지. 허나 영화를 보고 나면 또 하나의 ‘배우’가 또렷이 새겨진다. 바로 오상무(안성기)의 아내를 연기한 배우 김호정(47)이다. 》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한 찻집에서 만난 그는 요즘 세간의 관심에 기쁨보다 안타까움이 커보였다. 김호정은 “(노출은) 꼭 필요한 신이라 자연스레 찍었는데 너무 자극적으로 다뤄진다”며 “많은 배려를 해준 감독님과 동료 배우, 스태프에게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영화 ‘화장’에서 시한부 환자 아내(김호정)를 남편 오상무(안성기)가 화장실에서 도와주는 장면. 배우 김호정은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자존심이 뒤섞인 심경을 담은 중요한 신”이라며 “노출보다 감정에 집중해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 안성기 선배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명필름 제공
―역할이 이름도 없이 ‘아내’다.

“원작부터 그랬다. 그런데 연기할 땐 이런 익명성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나 자기 일처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내는 원래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로 설정됐다. 그런데 덜컥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주위에 이런 어머니들 참 많지 않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운명 앞에 좌절하는. 촬영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진짜 시한부처럼 연기가 리얼했다.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끝까지 숨기려 했는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알려졌으니…. 2000년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병명은…, 그냥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병이라고만 해두자. 그래서 죽음을 앞에 둔다는 게 뭔지 안다. 기적적으로 회복됐지만, 처음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허나 거장의 작품에 참여하는 건 배우로서 영광 아닌가. 고심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

―출연하길 잘한 거 같은가.

“물론이다. 내가 정말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영화 ‘나비’(2001년)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 받던 시절엔 절실함이 없었다. 특히 200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방황이 심했다. 게다가 중병까지 얻고…. ‘화장’은 철저히 신인으로 돌아가 초심으로 찍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훌륭한 감독과 동료배우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나 보다.

“물론 임 감독님은 현장에서 엄하시다. 그런데 촬영장 바깥에선 굉장히 인자하셨다. 배우의 고충을 잘 이해해 주셨다. 안성기 선배는 알려진 대로 친절했다. 그런데 너무 젠틀맨 이미지가 강조돼 그가 가진 연기의 열정이 묻히는 것 같다. 함께 연기해 보니 남은 1%라도 더 짜내서 연기에 밀어 넣는 배우였다. 게다가 상대 배우의 연기까지 끌어올리는 힘을 지녔다. 김규리는 보석 같았다. 통통 튀는 에너지 덕분에 나까지 힘이 났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도 출연하고 있다.

“너무 즐겁다. 비중도 크지 않고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배우는 게 많다. 배우에겐 주연 조연이 없다. 마찬가지로 매체도 상관없다. 7월부터는 명동예술극장의 러시아 연극 ‘아버지와 아들’(9월 개막) 준비에 들어간다. 논문(동국대 대학원)을 끝내고 나면 연극 연출도 준비할 계획이다. 연기 할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시간이 갈수록 깨닫는다. 배우는 무대에 서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 영화 ‘화장’ ::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젊은 동료 직원 추은주(김규리)에게 흔들리는 오상무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베니스와 토론토, 밴쿠버 영화제 등에 초청돼 “죽음과 욕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주연 안성기 김규리는 각각 ‘취화선’(2002년)과 ‘하류인생’(2004년) 이후 10여 년 만에 임 감독과 함께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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