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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미국간첩? 북한스파이? 한 여인의 극적인생

입력 2015-03-21 03:00업데이트 2015-03-2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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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 지음/484쪽·2만 원·돌베개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박헌영 등 젊은 한국인 혁명가들이 찍은 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헌영, 둘째줄 오른쪽이 부인 주세죽이고, 그 옆이 현앨리스다. 현앨리스의 동생 현피터는 앞줄 오른쪽에 앉아 있다. 박헌영과 현앨리스는 오누이처럼 지냈으나 30여 년 뒤 북한에서 같이 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된다. 돌베개 제공
1955년 당시 북한의 부수상이자 외무상인 박헌영(1900∼1956?)이 간첩 혐의로 기소된다. 그가 간첩이라는 주요 증거 중 하나는 미국 군정청장인 존 하지 중장의 지령을 받아 현앨리스(1903∼1956?) 등을 체코를 통해 입북시킨 뒤 중앙통신사 또는 외무성에 배치해 간첩 활동을 하게끔 했다는 것.

현앨리스는 3·1운동 당시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현순 목사의 맏딸이다. 1919년 당시 이화학당(이화여대)을 다니다 아버지를 따라 상하이에 온 그는 박헌영과 오누이와 같은 인연을 맺었다.

박헌영 간첩사건이 발생하기 10년 전인 1945년 서울. 현앨리스는 미군정 정보참모부 예하 정보기관으로 편지 검열을 통해 남한 내 정보를 수집한 민간통신검열단(CCIG-K)의 서울지구 부책임자였다.

주한미군 방첩대(CIC)는 현앨리스에 대해 “‘북에서 온 그녀의 친구들’을 대거 고용해 CCIG-K의 임무를 거의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평가하며 미국으로 추방했다.

뒷날 CIC가 조선공산당 당사를 급습해 확보한 문서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현앨리스는 미군 내 미국인 공산주의자들을 이끌고 박헌영 등과 수시로 접촉했고, 검열 정보를 수시로 빼내 외부에 제공하는 등 이른바 ‘스파이’ 노릇을 했다.

북한에선 ‘미국의 간첩’으로, 미군정 아래의 남한에선 ‘북한의 스파이’로 몰린 현앨리스. 이 책은 남북에서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퍼즐 맞추듯 풀어간다.

그 첫 단추는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찍은 단체사진 한 장이다. 이 사진은 그동안 박헌영이 1929년 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재학 시절 아시아 각국의 혁명가들과 찍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저자는 세밀한 고증을 통해 박헌영과 그의 부인 주세죽, 앳된 외모의 현앨리스와 남동생 현피터 등 당시 상하이에 있던 젊은 한국인 혁명가들의 기념사진임을 밝혀냈다.

이 사진은 3·1운동 당시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던 열혈 청년들에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해 가던 이들의 한때를 담았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박헌영과 현앨리스 등이 30여 년 뒤 북한에서 간첩 혐의로 혁명동지의 손에 의해 처형되는 비극을 맞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46년 미국으로 추방된 현앨리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다 공산주의자 색출 바람에 쫓겼고, 1949년 박헌영의 도움으로 북한에 입국한다.

북한에서 그는 현앨리스 대신 현미옥이란 한국 이름을 썼다. 수십 년간 꿈꾸던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에 왔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했다.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근현대의 인물과 정치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현앨리스에 대해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독립을 꿈꾸고 사회주의에 물들었던 이상주의자들을 대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상주의자의 삶은 의지와 열정으로 일생을 헌신했으나 냉전시대 남과 북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으깨졌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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