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성공의 덫 걷어차고 모든 걸 재설계하라”

이방실기자 입력 2015-03-09 03:00수정 2015-03-09 09:16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Special Report: 리디자인 코리아… 신동엽 교수의 장기생존 전략
신동엽 교수
정상의 경영 전문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창간 7주년을 맞아 ‘리디자인 코리아(Redesign Korea·대한민국 재설계)’라는 어젠다를 제시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개발도상국 기업의 추격 등으로 인한 주력 산업 분야의 경쟁력 약화,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의 불안정성 등으로 대한민국호(號)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리더들은 눈앞에 터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하며 장기적 생존과 번영을 위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DBR는 땜질식 처방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체제의 재설계를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지혜를 모았습니다. DBR 창간 7주년 기념호(172호·2015년 3월 1일자)에 실린 신동엽 연세대 교수의 재설계형 위기 대응 방안의 주요 내용을 요약합니다.

○ 코닥, 노키아가 몰락한 이유

기업이 높은 성과를 내려면 전략이나 문화, 시스템, 역량 등 경영체제에 뭔가 뛰어난 ‘성공 공식’, 즉 핵심역량이나 강점이 있어야 한다. 일단 자신의 성공 공식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대부분 기업은 그 강점에 집중해 이를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학습효과 덕택에 성과는 점점 높아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치명적 문제가 나타난다. 특정 경영체제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다른 대안의 배제와 포기를 의미한다. 만약 기존 성공 공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급진적 환경 변화가 발생하면, 즉,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뀌어 기존 핵심역량의 가치 자체를 파괴하는 ‘역량파괴적 환경 변화’가 발생하면, 기존 강점을 대체할 대안의 부재로 인해 기업 전체가 갑자기 붕괴할 수 있다. 과거 경쟁력의 기반이었던 성공 공식이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인해 ‘성공의 덫’이 되는 탓이다.

코닥, 노키아 등 20세기를 지배하던 전통적 강자들이 갑자기 몰락한 이유도 성공의 덫이란 관점에서 보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필름과 인화지 기술을 선도하며 100년간 세계 필름시장을 지배했던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이라는 급진적 환경 변화로 필름과 인화지가 필요 없어지면서 단숨에 무너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휴대전화를 싸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노키아의 몰락 역시 성공의 덫의 전형적 예다. 스마트폰의 등장에 따라 생산 효율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급감했는데도 과거의 성공 공식에 집착해 계속 더 싸게 디바이스를 만드는 전략에만 집중하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코닥과 노키아의 몰락 원인은 일반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방만한 경영’ 때문이 아니다. 급진적 환경 변화로 자신의 기존 성공 공식이 소용없게 됐음에도 성공의 덫에 빠져 기존 강점의 방어와 개선에만 집착한 결과다.

주요기사
기업뿐 아니라 한때 빛나는 성과를 창출했던 국가의 몰락 역시 대부분 성공의 덫이 원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개방적이었던 로마가 그 개방성 때문에 야기된 정체성 혼란과 이민족 진입에 의해 무너진 것이나, 전체주의적 동원체제로 급성장한 나라들이 그 획일성과 경직성 때문에 몰락한 사례는 국가 수준 성공의 덫의 예다.

○ 위기에 대응하는 두 가지 접근법

개인과 조직, 국가를 막론하고 치명적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에는 이미 발생한 구체적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 그 문제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문제 해결’ 방식과 아예 그 문제들이 발생한 맥락, 즉 판 자체를 새로 짜는 ‘재설계’ 방식의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문제 해결형 위기 대응 전략에선 현재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체제 자체는 유효하지만 그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나 특정 사람들의 잘못으로 위기가 발생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오류를 일으키는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둔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적인 문제 해결과 개선 활동을 하면 현 체제의 신뢰성을 완벽에 가까운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체제 자체의 지속가능성과 유효성을 전제로 반복적 문제 해결과 개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거나 예방하겠다는 접근법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하에 영리 기업과 공기업, 비영리 조직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된 개혁 열풍과 다양한 혁신 활동들은 문제 해결형 위기 대응의 전형적인 예다.

반면 재설계 방식은 기존 체제 자체가 더 지속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고 전제한다. 현 체제하에서는 아무리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더라도 결코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반드시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설계 관점에선 문제란 예외적이거나 일시적인 오류 혹은 일탈이 아니라 그 체제의 본질적 속성이다. 따라서 체제의 구조나 프로세스, 제도뿐 아니라 근본 논리와 핵심 가치에 이르기까지 체제의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들을 동시에 교체해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지금은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

현재 우리의 기존 체제가 과연 결정적 한계에 봉착했는지, 그래서 반드시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사례를 살펴보자. 품질경영과 디자인경영을 앞세워 단숨에 글로벌 5위까지 치고 올라온 현대차가 최근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측이 나온다. 눈여겨볼 점은 현대차의 위기가 전통적 경쟁자로 꼽히던 도요타나 폴크스바겐이 아니라 전혀 엉뚱하게도 구글이나 폭스콘 같은 정보기술(IT) 분야 기업들로부터 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최근 애플의 생산기지 정도로만 알았던 폭스콘이 우리 돈으로 1500만 원대 초저가 전기차를 5년 내 대량생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폭스콘은 테슬라와 손잡고 중국 산시 성과 대만 타이중의 전기차 생산기지 건설에 80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결정했다. 전기차와 함께 미래 자동차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히는 무인자동차 산업에서 최강자는 도요타나 폴크스바겐이 아니라 구글이다. 이는 게임의 규칙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역량파괴적 환경 변화’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역량파괴적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이 바로 자신의 기존 성공 공식이라는 사실이다. 전혀 다른 게임의 규칙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 도래했는데도 많은 기존 강자들은 성공의 덫에 빠져 체제의 재설계에 실패했다. 문제 해결이나 혁신기법 채택으로는 역량파괴적 환경 변화에 따른 게임 규칙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체제 자체의 기본 전제와 논리로부터 구체적 프로세스와 제도까지 모든 것이 동시에 일관성 있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