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가 90's ⑥] ‘걸그룹 원조’ S.E.S부터 ‘힙합 조상님’ 듀스까지

스포츠동아 입력 2015-01-09 06:55수정 2015-01-09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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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나 지금이나 세월이 흘러도 가요계의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청순한 걸그룹과 멋진 아이돌.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는 댄스,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 또 전투적인 힙합. S.E.S(왼쪽)와 듀스 등이 있었기에 그때의 음악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이어올 수 있었다. 스포츠동아DB
■ 주말기획|‘토토가’ 댄스음악 그리고 1990년대

다시 보는 가수 계보

‘토토가’에 출연한 S.E.S에는 바다, 슈, 그리고 소녀시대 서현이 유진의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서현과 유진 사이에 놓인 10년의 시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소녀시대의 ‘원조’는 S.E.S인가보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주역들이 케이팝의 이름으로 해외에서까지 명성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토토가’는 이처럼 그 원류를 들여다보게도 한다. 시대와 트렌드의 빠른 변화, 그 속에서 숱한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대중음악의 흐름을 형성한 이들이 어쩌면 ‘토토가’ 무대에 섰던 건 아닐까.

신승훈→조성모→성시경 ‘발라드 황제’ 계보
서태지·노이즈·터보는 ‘아이돌 그룹의 원조’
듀스·지누션도 가요계 힙합 대세 이끈 주역

● 걸그룹 ‘아임 유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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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22일자 경향신문은 “‘여성판 HOT’ 돌풍, 여고 3인조 댄스그룹 SES”라는 제목에서 “여고생다운 상큼함으로 남학생들에 인기몰이를 한다”고 보도했다. S.E.S는 그해 11월 ‘아임 유어 걸’로 데뷔한 걸그룹 1세대로 꼽힌다. 당시 이들은 “앙증맞음과 차분함 그리고 섹시함”(동아일보 1998년 3월10일자)이라는 이유로 남성 팬들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2002년 공식 해체했지만 대중의 기억 속엔 아직도 ‘영원한 소녀들’로 남았다. S.E.S와 함께 ‘걸그룹 쌍두마차’로 불리는 핑클. 이들은 1998년 ‘블루 레인’으로 데뷔해 당시 S.E.S와 라이벌구도를 형성했다. 옥주현, 이효리, 성유리, 이진으로 구성된 핑클은 깜찍한 외모, 뛰어난 노래 솜씨 등으로 “가요계의 요정”(동아일보 1998년 10월12일자)으로 불렸다. S.E.S처럼 공식 해체한 것은 아니지만, 2002년 활동을 중단하고 멤버들은 개인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베이비복스, 클레오, 티티마, 써클 등도 걸그룹 열풍에 힘입어 1999년까지 잇따라 데뷔했다. 이들은 모두 현재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수많은 걸그룹의 ‘레퍼런스’가 되어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듯하다.

● 발라드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발라드는 가수 앞에 붙는 타이틀을 보면 그 계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발라드의 황제’로 불리는 신승훈이 1세대, 그 뒤를 이어 ‘발라드의 황태자’라는 애칭을 얻은 조성모로 이어져 내려온다. 신승훈은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해 애절한 목소리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학생가수 신승훈, 인기 돌풍 일으킨 가요계 새 별”(동아일보 1991년 1월18일자)로 인정받았고, 이듬해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연달아 대박을 내면서 승승장구했다. 조성모는 1998년 ‘얼굴 없는 신인가수’로 발을 내디뎠다. 이병헌과 김하늘이 주연한 뮤직비디오 ‘투 헤븐’으로 시선을 모으며 단숨에 12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후 성시경, 박효신 등이 이들의 계보를 이어받았다.

● 댄스 ‘난 알아요’


1990년대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건모. 그는 발라드와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로 무대에 나섰다. 1992년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해 ‘핑계’(1993)로 100만장을 팔아치우며 밀리언셀러가 됐다. 독특한 음색, 개성 강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으로 곳곳에 ‘김건모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건모와 같은 해에 데뷔한 서태지와아이들. 이들은 데뷔곡 ‘난 알아요’를 통해 “데뷔 두 달 만에 톱 싱어”(동아일보 1992년 6월27일자) 자리에 올라섰다. “춤 잘 추고, 개성 있고, 발랄하고, 랩 잘하고, 반바지 옷차림 등으로 청소년의 우상”(한겨레 1992년 6월27일자)으로도 떠올랐다. 그해 데뷔한 4인조 남성그룹 노이즈(천성일·홍종호·한상일·권재범)는 “경쾌한 랩 댄스와 화려한 의상 등으로 데뷔 한 달 만에 돌풍”(동아일보 1993년 1월31일자)을 일으켰다. 1995년 남성듀오 터보(김종국·김정남)가 ‘나 어릴적 꿈’으로 정상에 올라섰고, ‘검은 고양이 네로’로 방송 3사의 가요 차트를 석권했다. 현존하는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원조가 바로 이들이라 할 만하다.

● 힙합 ‘말해줘’

1990년대 댄스음악 돌풍이 불어 닥치면서 힙합도 함께 주목받았다. 1993년 2인조 남성듀오 듀스(김성재·이현도)는 빠르게 읊조리는 랩과 강렬한 비트 등으로 힙합 바람을 몰고 와 ‘나를 돌아봐’ ‘상처’ ‘말하자면’ 등 히트곡을 남겼다. 이후 전문 힙합 댄스그룹 ‘피플 크루’가 등장하며 힙합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서태지와아이들의 양현석이 제작자로 나서 2인조 남성듀오 지누션(김진우·노승환)을 선보였고, 1997년 히트곡 ‘말해줘’ ‘전화번호’ 등으로 사랑받았다. 양현석은 이듬해 4인조 힙합그룹 원타임(대니·테디·송백경·오진환)을 또 다시 선보이면서 힙합 프로젝트팀인 ‘YG 패밀리’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날, 힙합은 한국 대중음악의 대세가 됐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트위토@mango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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