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결로 빚은 클레이 점토 인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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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서 투병 김현석씨 “작업하는 동안엔 통증도 잊어”
150점 만들어 환자 등에 희망선물

김현석 씨가 병동에서 클레이 점토 작업에 집중하고있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제공
김현석 씨가 병동에서 클레이 점토 작업에 집중하고있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제공
“생애 마지막에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네요.”

지난달 14일 인천 서구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소아청소년센터 외래병동. 호스피스 병동에서 투병 중이던 김현석 씨(43)가 복도 한편에 늘어선 클레이 점토 150여 점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토끼 개구리 등 형형색색의 작고 귀여운 동물 모양을 한 점토 인형들은 김 씨가 빚어낸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직장암으로 7년간 투병 중인 김 씨가 호스피스 병동에 온 건 7월. 방광, 폐 등으로 암세포가 전이돼 어떤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시 통보받은 기대여명은 1개월. 하지만 김 씨는 3개월 넘게 기적 같은 숨을 이어오고 있다.

김 씨에게 힘을 준 건 다름 아닌 클레이 점토 작업이었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김 씨는 두 달 전 우연히 클레이를 만졌다. 제빵사였던 김 씨는 클레이를 손에 대자 타고난 손재주가 되살아났다. 조용히 앉아 주물럭대면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 김 씨의 아내는 “남편이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과자를 동물 모양으로 참 잘 만들었다”며 “재료는 다르지만 그때 실력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클레이 작업은 김 씨에겐 치유의 과정과도 같았다. 하루에 3∼4시간씩 작업한 날도 있었다. 김 씨는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마약성 진통제 투여량도 줄었다”며 “몸은 힘들지만 작업을 끝내면 개운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 개, 두 개 쌓이며 양이 많아지자 병원 측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고민 끝에 김 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을 본 병동 환자들은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 ‘덕분에 힘이 났어요’ ‘감동적이에요’ 등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 씨는 “호스피스 병동에 올 땐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삶의 ‘양’은 모르겠지만 삶의 ‘질’은 더 나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엔 영정 사진도 찍었다. 김 씨의 아내는 “삶을 이어가는 동안이라도 우리 부부는 하루라도 밝게 살고 서로 웃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전했다.

현재 병원 측은 “전시회가 끝난 작품 중 일부는 김 씨의 바람대로 소아청소년센터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호스피스 병동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천=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김현석#클레이 점토#직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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