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Leisure]세리→세리키즈→리틀세리키즈 LPGA, 꿈은 계속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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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주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태극 낭자의 LPGA 도전역사

《 일단 ‘리틀 세리키즈’의 첫 번째 반란은 성공했다.

김효주(19·롯데)가 1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것. 김효주는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도 3승을 기록하며 한 시즌 역대 최다 상금 기록을 갈아 치운 뒤 대회 때마다 갈아 치우고 있다. 그렇다고 ‘세리 키즈’가 몰락한 건 아니다.

허미정(25·코오롱)은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올랐고 최나연(27·SK)도 5위로 대회를 마쳤다. 박인비(26·KB금융그룹) 역시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는 실패했지만 공동 10위를 나쁜 성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확실히 힘이 빠진 건 공동 47위에 그친 박세리(35·KDB금융그룹)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세리가 없었다면 LPGA를 호령하는 태극 낭자들도 없었을 터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말한 것처럼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아니나 다를까 허미정은 바로 다음 대회인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에서 우승 꿈을 이뤘다. 》
박세리(맨 오른쪽)가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KDB대우증권클래식을 앞두고 자신을 롤 모델로 성장한 세리키즈와 자리를 함께 했다. 왼쪽부터 최나연, 박인비, 유소연, 장하나, 김자영. 아래 사진은 세리키즈의 ‘화룡점정’을 찍은 박인비. 동아일보 DB
박세리(맨 오른쪽)가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KDB대우증권클래식을 앞두고 자신을 롤 모델로 성장한 세리키즈와 자리를 함께 했다. 왼쪽부터 최나연, 박인비, 유소연, 장하나, 김자영. 아래 사진은 세리키즈의 ‘화룡점정’을 찍은 박인비. 동아일보 DB
맨발의 세리

김하늘(26)은 2011년 KLPGA 투어에서 상금, 다승, 대상을 휩쓴 스타 골퍼지만 아마추어 시절에는 무명에 가까웠다. 김하늘은 대표팀은 고사하고 그 아래 단계인 상비군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김하늘은 “나이별로 대표 인원이 정해져 있었다. 다른 기수는 대표 선발 포인트를 50점만 따도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난 150점을 따도 못 달았다”고 말했다.

동기들 면면을 보면 김하늘이 괜히 엄살을 떠는 건 아니다. 김인경 박인비 신지애 오지영 최나연 등이 김하늘과 동기다. 1988년생 용띠인 이들이 열 살이던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연장전에서 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연못)에 들어가 공을 쳐 내는 투혼으로 어린이들에게 빛나는 롤 모델(role model·역할 모델)이 됐고,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세리 키즈를 낳았다.

프로필에는 1987년생이지만 이들과 동기인 최나연의 아버지 최병호 씨는 “나연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8명 정도였던 대회 출전 선수가 갑자기 50명 가까이로 늘었다. 박세리 프로가 우승한 뒤였다”고 말했다. 세리 키즈 중 처음 앞서 간 건 최나연이었다. 최나연은 경기 오산시 성호중에 다니던 2003년 15세로 동기 중에서 처음으로 대표팀에 뽑혔다.

아마추어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세리 키즈는 프로 전향 후에도 강자로 이름을 날렸다. 신지애는 국내 투어에서 21승, LPGA투어에서 11승을 거두며 월드 스타로 떠오른 뒤 올 시즌 일본 투어에서 4승을 거뒀다. 우승 트로피를 안을 때마다 이들은 박세리를 떠올렸다. 신지애는 2008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뒤 “세리 언니는 아직도 나의 영웅”이라고 말했고, 2012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박인비도 똑같이 말했다.

맨땅의 박인비

세리 키즈 중에서도 박인비는 특별하다. 박인비는 박세리가 우승한 뒤 꼭 10년이 지난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2012년까지 그는 미국(LPGA)보다 일본이 더 익숙한 선수였다. 2012년까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서 3승을 따냈지만 LPGA 4년 연속 무관 신세였다. 그를 후원하겠다는 기업도 없었다.

그러다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운명이 변하기 시작했다. 박인비는 그해 시즌 2승에 2위도 6차례 기록하며 총 상금 228만7080달러로 상금 랭킹 1위에 올랐다. 이듬해(2013년)에는 메이저 3승을 포함해 6승을 기록하고, 245만6619달러를 상금으로 벌어들여 2년 연속 상금 랭킹 1위 자리를 지켰다. 한 시즌 6승은 박세리가 2001년과 2002년에 세웠던 시즌 5승을 뛰어넘는 한국 선수 최다 기록이었다.

박인비는 2013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그해 4월 15일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1위에 올라 올해 6월 1일까지 줄곧 최정상을 지켰다. (LPGA에서 세계랭킹을 도입한 건 박세리의 전성기가 지난 2006년이다.) 신지애가 15주 동안 1위를 지켰던 국내 선수 최장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게다가 박인비는 지난해 ‘올해의 선수상’까지 차지했다. 박세리도 한번 못 타 본 상이다. 시간이 필요한 LPGA 통산 승수에서는 여전히 박인비가 박세리에 뒤진다. 박인비는 통산 11승으로 아직 박세리(25승)의 절반도 되지 못한다. 박인비는 “언니가 워낙 대단한 기록을 세웠기에 그걸 깨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진 않는다. 다만 매 대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효주
맨 위에 효주

최나연, 신지애, 박인비 등 세리 키즈의 선전을 보며 리틀 세리키즈가 컸다. 올해 한국 나이로 스무 살이 된 1995년생 이들은 중고교 시절부터 ‘제2의 신지애·최나연’ 등으로 불리면서 세리 키즈 이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세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선두주자는 역시나 김효주. 그는 지난해 KLPGA 신인상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가능성을 증명했다. 김효주는 올시즌 KLPGA투어에서 상금 8억1916만 원으로 이 부문 1위를 질주하며 사상 첫 10억 원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김효주와 국가대표 생활을 함께하며 2012년 터키 세계아마추어선수권 금메달을 따낸 백규정, 김민선(이상 19·CJ오쇼핑)은 올해 한꺼번에 KLPGA투어에 진출했다. 모두 키가 170cm가 넘고 뛰어난 장타 실력을 지녔다. 지난해 2·3부 투어 우승을 휩쓸며 경험도 쌓았다. 백규정은 21일 끝난 KLPGA 챔피언십에서 시즌 3승째를 거두며 무서운 신인의 면모를 과시했다.

역시 1995년생 돼지띠인 고진영(19·넵스)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달 넵스 마스터피스에서 데뷔 후 첫 우승을 차지한 고진영은 상금 3억9564만 원을 받아 상금랭킹 6위에 올라 있다. 1위 김효주를 비롯해 4위 백규정(4억5356만 원), 13위 김민선(2억2926만 원)까지 현재 KLPGA 상금 랭킹 20위 중 4명이 리틀 세리 키즈인 것이다. 역사는 전통을 낳고, 전통은 자부심을 만든다. 박세리는 역사를 썼고, 세리 키즈는 전통이 됐다. 이제 한국 리틀 세리 키즈가 자부심을 안고 뛸 때다. 한국 여자 프로골프의 선순환 구조는 현재 진행형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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