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몇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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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작가 안규철 개인전

‘두 개의 시간.’ 시각을 알 수 없게 돌아가는 이 두 벽시계 앞에는 ‘골든타임’을 음각한 개수대 설치 작품을 놓았다. 하이트컬렉션 제공
‘두 개의 시간.’ 시각을 알 수 없게 돌아가는 이 두 벽시계 앞에는 ‘골든타임’을 음각한 개수대 설치 작품을 놓았다. 하이트컬렉션 제공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누구나 눈코 뜰 새 없이 너무들 열심이어서 뭐든 당연히 잘 돌아가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제대로 이뤄지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아프게 거듭 확인한다.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59)의 개인전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견고한 모순에 대한 고민의 부산물이다. 한가롭고 무책임한 관망의 독백은 없다. 다들 내심 눈치 채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한 질문을 또렷이 드러낸다. “그저 바쁘기만 한 이 한심스러운 실패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지하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맞은편 벽면의 아날로그 시계 두 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분침 시침과 함께 시계 몸체가 통째로 돌아간다. 하나는 시계 방향, 다른 하나는 시계 반대 방향.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어느 쪽 시계를 봐도 지금 몇 시인지 알 도리가 없다.

공간 중앙에는 벽돌 4000여 장으로 높이 1.8m, 너비 6m 벽 두 개를 60cm 간격으로 나란히 쌓았다. 전시 기간 내내 한쪽 벽 끄트머리 벽돌을 조금씩 덜어내 다른 벽 끄트머리에 옮겨 쌓는다. 두 벽은 각각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부지런히 이동할 뿐, 그로 인한 ‘결과’는 없다.

안 교수는 “한국의 거의 모든 정당 이름에는 ‘새’라는 관형사가 붙는다. 이건 실상 ‘새로움이 불가능하다’는 고백 아닐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쉼 없는 공회전만 반복하는 현상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충분히 우울한 사람들을 더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전시는 이어진 2층 공간에서 실패를 위로한다.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를 인용한 설치작품을 통해 ‘결국 오직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속삭인다. 작가 스스로의 실패와 모순을 솔직히 고백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 비로소 아름답다. 29일∼12월 13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컬렉션. 02-3219-027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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