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곽흥렬]스토리텔링인가 플롯텔링인가

동아일보 입력 2014-08-04 03:00수정 2014-08-04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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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흥렬 동리목월문예창작대 교수
세간에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신문의 문화면은 말할 것도 없고, 잡지책이나 사보 같은 데서도 단골로 다뤄지는 소재가 됐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이름으로 상금을 걸고 이런저런 공모전도 열린다.

그런데 나는 스토리텔링이란 말에 이상스럽게도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학부 시절 문학 수업 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은사님의 말씀 때문이다.

“스토리는 시간 순서에 의한 구성이어서 예술성이 없다. 그러므로 인과관계에 의한 구성인 플롯을 써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르침은 일찍이 영국의 소설가 포스터(E M Forster)가 설파한 이론이었다. 그는 소설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스토리(story)와 플롯(plot)이 그것이다. 단순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사건을 서술하는 것을 스토리라 하고,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부여하여 사건을 유기적으로 펼쳐 나가는 것을 플롯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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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시간 순서로 사건을 서술하다 보니 ‘그 다음에는?’이라는, 말 그대로 연속되는 이야기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제공한다. 그러나 플롯은 인과관계를 부여해 사건을 역순으로 배열하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에 따라 논리적 판단과 지적인 노력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소설 구성상에서 어떤 미적 계획으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얽어 짰을 때 그것이 플롯에 해당된다. 예컨대 ‘왕이 죽고 그리고 왕비가 죽었다’고 표현하면 스토리가 되고, ‘왕이 죽자 왕비도 슬퍼서 죽었다’라고 표현하면 플롯이 되는 것이다.

포스터의 이론대로라면, 소설 창작에서 스토리는 그다지 권장할 만한 방법이 못 되고 플롯이 글 쓰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기법이 된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플롯이라는 말은 자취를 감추고 온통 스토리라는 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나의 알량한 식견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스토리텔링이란 단어는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의 합성어이다. 낱말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상대방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기법은 평면적인 구성법이기 때문에 예술성을 갖지 못한다.

어차피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 합성된 용어라면 ‘플롯텔링’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용어가 아닌가. 미적인 가치나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는 스토리보다는 플롯이 훨씬 우위에 있으니 말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들불처럼 유행하는 현상은 과연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러한 풍조를 나는 사람들의 줏대 없음에서 찾고 싶다. 우리 속담에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말이 있다. 남들이 하면 무비판적으로 따라 하는 이들의 성향을 풍자한 격언이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골치 아프게 머리 쓰기 싫어하는 현대인의 속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스토리는 구성이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고 동시에 쉽게 읽힐 수 있다. 반면 플롯은 복잡한 구성을 필요로 하므로 쓰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읽는 데도 고도의 사고력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이쯤 되면 결론은 이미 내려졌다. 앞으로는 스토리텔링이란 용어보다는 플롯텔링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곽흥렬 동리목월문예창작대 교수
#스토리텔링#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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