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페트라에서 본 ‘아랍의 중심’ 요르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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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사막의 고대도시 페트라에 있는 알카즈네 유적. 매일 밤 열리는 페트라 바이 나이트다. 주한요르단대사관 제공
요르단 사막의 고대도시 페트라에 있는 알카즈네 유적. 매일 밤 열리는 페트라 바이 나이트다. 주한요르단대사관 제공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은은한 촛불의 바다를 가로지르며 잔잔히 퍼져 나가던 아랍 전통 악기 라바바(비올라와 바이올린의 원조)의 여린 음률이…. 여기는 요르단 사막의 고대도시 페트라. 거기서 매일 밤 펼쳐지는 ‘페트라 바이 나이트’다. 사막의 밤이 선사하는 멋진 이벤트다. 1800개의 촛불이 대낮과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이곳은 바위 지반을 1km 이상 가른 폭 3∼4m 틈새 안이다. 깊이는 200m나 된다. 베두인 족은 ‘시끄(Siq)’라 부르는데 여긴 거기서도 막장이자 고대도시 페트라로 통하는 초입이다. 이 건물은 ‘알카즈네(영어로는 트레저리·보물)’라고 불린다. ‘파라오의 보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보물과는 관련이 없다. 이 언저리에 보물이 숨겨져 있으리라 지레짐작하고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이다. 현금이 아닌 어음을 두고 얼마나 싸웠던지 유적엔 총알 자국이 허다하다.

보다시피 이건 건축이 아니다. 조각이다. 절벽을 파냈으니 당연하다. 용도는 모른다. ‘수도원’이란 글씨와 발견된 유골로 미뤄 왕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할 뿐이다. 만든 때는 무려 2000년 전. 주역은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인(人)들. 이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유목민이 이곳에 정착한 건 기원전 6세기경이다. 지하수가 풍부하고 요새로도 안성맞춤인 시끄, 대상(隊商)이 반드시 지나는 길목이란 매력이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동쪽 페르시아 만과 서쪽 홍해, 서북쪽 지중해를 잇는 고대 무역로의 중심이다.

대상은 페트라에서 쉬며 보급품을 조달했다. 나바테아인은 대상의 호송대까지 자처했다. 그러면서 통행료에 호위료, 교역의 이익까지 챙겼다. 그러니 부유해진 건 당연지사. 8000명이 들어가는 대형 원형극장 등 페트라의 거대한 석조건물이 그걸 웅변한다. 그런데 이 페트라가 요르단 땅인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기야 나도 3년 전 취재 중에야 알게 됐으니. 그런 요르단은 알수록 관심이 깊어지는 특별한 나라다. 중동 역사의 한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트라가 2500년 전 유럽과 아랍, 중국과 인도를 잇는 대상무역의 중심이었듯.

요르단의 한 자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랍대봉기(The Great Arab Revolt)’를 그린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 작)다. 아랍대봉기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짓밟힌 중동 부족이 영국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벌인 독립전쟁이다. 1916년 6월 10일의 메카 탈환 전투가 시작이었다. 선봉은 ‘아랍 왕’ 셰리프 후세인 빈 알리(당시 이슬람 성지 메카의 수장·‘셰리프’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직계 후손임을 알리는 칭호). 영화는 영국 육군정보부가 파견한 로렌스 대위가 아랍부족을 도와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물리친 실화가 바탕이다. 이 영화의 무대가 대부분 요르단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파이살 왕자(시리아 왕국)가 이끄는 낙타병의 아카바 습격 장면. 로렌스 대위가 왕자를 설득해 낙타병 40명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건넜던 네푸드 사막과 오스만튀르크 군에 장악된 아카바 항이 모두 요르단 땅이다. 아랍대봉기의 선봉에 섰던 후세인 빈 알리는 현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의 고조할아버지다. 아랍대봉기 이후 중동에 잇따라 국가(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가 건설된다. 아랍왕 후세인 빈 알리의 다섯 아들 중 셋이 이들 국가의 왕위에 올랐다. 요르단의 공식 국명은 ‘요르단의 하심 왕국(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 하심 왕가는 예언자 마호메트(쿠리시 종족 내 바누하심 부족장의 외증손자)가 그 뿌리다. 생전의 후세인 요르단 국왕(1999년 서거)이 중동 외교 무대에서 중재자로 존중받았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르단의 독립기념일은 6월 10일, 아랍대봉기가 시작된 바로 그날이다. 아랍대봉기는 2년 후면 100년을 맞는다. ‘아랍의 봄’(2010년) 이후에도 차분히 성장 중인 요르단과 달리 이웃한 이집트와 시리아는 내홍을 겪고 있다. 그 이유를 수도 암만에서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국왕에 대한 국민의 신뢰였다. 아랍대봉기 100주년을 맞을 때쯤엔 아랍 전체가 안정되길 기원하며 요르단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한다.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페트라#요르단#아라비아의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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