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살리에리 “내가 질투의 화신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오스트리아 수도이자 ‘세계 음악의 수도’로 불리는 빈에 왔습니다. 18세기 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라는 ‘빈 고전파 세 거장’을 품었던 멋진 도시죠.

그런데 세 사람이 서로 각별히 친했던 건 아닙니다. 모여서 ‘고전파 선언’ 같은 걸 했던 것도 아닙니다. 당시 빈에는 이들 외에도 높이 인정받는 음악가가 여럿 있었습니다. 한 예로 이탈리아인인 안토니오를 들 수가 있습니다.

안토니오는 하이든과 친했으며 그가 걸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초연할 때 악단 한가운데서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안토니오는 특히 음악교사로 명성이 높았는데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가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베토벤이 유명해진 뒤에는 그의 피아노협주곡 1, 2번 초연 무대에서 지휘를 맡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슈베르트 전기에서 ‘은혜로운’ 이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차르트와의 관계는 약간 묘합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종종 안토니오에 대한 ‘뒷담화’를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공적으로 두 사람은 깍듯이 존중하는 사이였습니다. 모차르트가 젊은 나이에 죽은 뒤 부인 콘스탄체는 막내아들 프란츠 크사버를 안토니오에게 보내서 음악교육을 받도록 했고 그는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역량을 인정받는 음악가로 성장했습니다.

안토니오에 대해 들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는 바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사진)입니다. 푸시킨이 1831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을 발표했고 영국 극작가 피터 섀퍼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1979년 희곡 ‘아마데우스’를 발표했으며, 5년 뒤 이 희곡을 밀로시 포르만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살리에리라는 이름은 ‘천재가 될 수 없는 범재’ ‘질투에 빠진 살인자’와 동의어가 됐습니다. 증거도 없이 말이죠.

빈 거리에는 곳곳마다 모차르트의 기념물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황제 요제프 2세의 총애를 받았던 살리에리의 자취는 ‘살리에리 피자집’ 정도를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다른 세상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빈에서

유윤종 gustav@donga.com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고전파#안토니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