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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처벌 대신 용서… 르완다 일으켜 세운 ‘가차차’

입력 2014-04-07 03:00업데이트 2014-04-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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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 대학살 20주년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한국서 평화 캠페인 6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열린 르완다 대학살 피해자 20주기 추도식 참가자들이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월드비전의 평화 캠페인에 참가한 이들은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비폭력의 상징이자 피해 아동을 의미하는 꽃을 들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994년 4월 7일, 종족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시절. 아프리카 르완다 라디오 방송 RTLM이 “투치족(族) 바퀴벌레들을 모두 소탕하자”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전날 대통령이 탄 비행기에 대한 로켓 공격이 투치족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후투족(약 85%)과 투치족(약 14%)으로 구성된 르완다에서 3개월 만에 국민의 10%인 100만 명이 학살됐고 여성 15만∼20만 명이 성폭행 당했다.

대학살 20주년을 맞은 현재의 르완다는 놀랍게도 제노사이드(인종말살)를 극복하고 발전을 향해 달려가는 승리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 대학살을 극복하고 협력을 가능케 한 배경은 바로 ‘가차차 제도’를 통한 종족 간 화해와 협력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르완다의 전통적 재판제도인 가차차는 현지어로 ‘짧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풀밭’이라는 뜻. 풀밭에서 열린 재판에서 유래한 말이다. 과거 마을의 원로나 현자(賢者)들이 주재한 가차차는 재산 분할, 절도, 유산 상속 문제를 해결했다. 징벌보다는 화해와 협력이 우선시됐다.

르완다 정부는 2001년 대량학살 문제를 다룰 가차차를 전국 1만2100개 마을에 공식 설치했다. 법조 교육을 받은 재판관이 아니라 성별에 관계없이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재판관이 될 수 있게 했다. 가차차가 열리는 날에는 마을에 시장이 서는 것을 금지해 모든 사람이 재판에 참여하게 했다. 중요한 것은 학살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용서를 구하면 파격적으로 형량을 줄였다는 점이다. 죄를 시인한 학살 가담자들은 징역형 대신 피해자 측에 노동을 제공하거나 소 같은 재산을 건네라는 판결을 받았다.

가차차 재판은 빠르게 진행됐다. 가차차가 가동되지 않았다면 르완다 정부는 지금까지도 대량학살 가담자 10만 명에 대한 재판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통합화해위원회의 파투마 은당기자 위원장은 “서구식 법정에서는 가해자가 결코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 가차차에서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들인 피해자들은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용서와 자비를 베푼다”고 말했다. CNN도 폴 카가메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르완다가 ‘눈에는 눈’ 전략으로 나갔다면 르완다 국민은 모두 장님이 됐을 것”이라며 가차차 제도를 높이 평가했다.

갈가리 찢어졌던 르완다는 가차차를 통해 서로를 치유하면서 다시 일어섰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르완다의 국내총생산(GDP)은 1994년 7억5300만 달러(약 7942억6000만 원)에서 2012년 71억300만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인터넷 보급률도 2005년 0.6%에서 2012년 9%로 늘었다. 르완다 개발청(RDB)이 만든 투자친화적 환경 덕분에 2000년 90억 달러에 머물던 외국인직접투자는 지난해 8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가차차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학살 주동자 처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 주동자는 해외로 도피해 반정부 활동을 하고 있다. 피해자 보상도 여전히 숙제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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