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사장님 월급, 얼마면 됩니까

동아일보 입력 2014-01-17 03:00수정 2014-01-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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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우리 사회는 조만간 하나의 시험대에 오른다. 자본시장법이 바뀌면서 연봉 5억 원이 넘는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등기 임원의 연봉이 올해부터 공개된다.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의 CEO는 월급만 10억 원 넘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봉은 100억 원이 넘는다. 엄청난 소득격차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술렁일 것이다. 놀라거나, 부럽거나, 배 아프거나, 분노하거나.

미국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런 격차가 인터넷 기술혁신이 가져온 신(新)경제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혁신을 이끌 인재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훨씬 초과하는 반면 단순 업무는 기계나 해외 근로자로 인해 공급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상위 1%만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상위 1%만이 이끌어갈 수 있는 경제’가 됐다는 얘기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 제품과 기술로 해외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한국 기업들에 CEO의 연봉은 성장의 성과물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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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이건희 삼성 회장은 당시 노인식 삼성그룹 인사팀장에게 “계열사 CEO들의 연봉을 지금보다 3배 올리라”고 지시했다. 예상치 못한 방침에 당황한 실무자들은 궁리 끝에 1.5배 인상안을 마련했다가 이 회장에게 혼쭐이 났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인상을 마무리하자, 이 회장은 “이제 당신들보다 더 연봉을 많이 받을 인재를 데려오라”고 주문했다. 이를 실천한 CEO에겐 연봉을 더 올려줬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였고,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30조 원대에 불과했던 삼성전자의 매출은 지난해 228조 원을 넘어섰다.

“스마트폰 사업을 이끄는 신종균 사장은 작년에 영업이익을 24조 원쯤 올렸습니다. 이렇게 회사에 돈을 많이 벌어다줘서 연봉을 많이 받는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연봉을 많이 받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삼성그룹 고위 관계자)

하지만 이렇게 냉정한 분석과 비즈니스 논리를 수긍해주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우리보다 먼저 소득격차를 목격한 미국은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이는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이어졌다. 뉴욕 월가의 탐욕스러운 금융기업에 쏟아진 분노가 국내 제조기업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경제발전에 제대로 기여하지 않으면서 거품을 만들어 부(富)를 독식한 것은 금융자본이지 산업자본이 아니다. 한국 기업 중 대부분은 산업자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시민들도 GM, 포드, 애플 같은 제조기업에 분노를 쏟아내진 않았다.

휴화산처럼 남아있는 사람들의 분노는 기업에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연봉 공개로 분노가 치솟으면 기업들은 연봉 수준을 낮출 수 있다. 주주의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정해진 것인데도 말이다. 라이시 교수나 삼성의 시각에서 보면 신경제의 동력을 잃는 일이고, 김 교수의 시각에선 제조기업에 억울한 일이다.

모든 CEO의 연봉 수준이 도덕적으로 문제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회사는 망해 가는데 제 주머니만 채운 일부 오너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는 이참에 사라져야 한다. 고액연봉 CEO들은 사회의 소외된 곳을 살펴 부를 나누는 배려를 더 했으면 한다. 재계는 사회와 더 열심히 소통해야 한다.

CEO의 고액 연봉을 놓고 어떻게 갈등을 풀어낼 것인가. 여기에 한국 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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