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의 미래 전략을 생각하는 정문술 씨의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1일 03시 00분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자식에게 너무 많은 유산을 남겨 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했다. 평생 땀 흘려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유산 기부 운동이 펼쳐지고는 있지만 자산가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나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이 참여한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의 통 큰 기부가 새해 벽두를 훈훈하게 달구고 있다. 2001년 300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데 이어 다음 주 215억 원을 쾌척하기로 했다. 그가 기부한 총액 515억 원은 개인이 대학에 낸 기부금으로는 류근철 한의학 박사(578억 원)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기업 경영에서도 범상치 않은 행보를 했다. 반도체 관련 미래산업을 창업하고 벤처기업 10여 개에 투자해 ‘벤처업계 대부’로 불렸다. 그리고 2001년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후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돈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정 전 회장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기부 소감은 영혼을 울리는 힘이 있다. 전셋집에 살면서 큰돈을 기부할 때 망설임과 고민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만족해했다. 그가 기부금을 써 달라고 지정한 분야는 미래전략과 뇌과학이다. KAIST는 이 돈으로 미래전략대학원을 세워 국제관계 경제 산업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 장기 전략을 제시하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같은 싱크탱크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뇌과학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국가 미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로 꼽는 분야다.

이광형 KAIST 교수는 “정 전 회장은 항상 10∼20년 뒤 한국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분”이라면서 “정권과 관련 없이 국가 장기 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10여 년 전 바이오와 정보기술(IT)의 융합과학을 위해 300억 원을 내놓은 것도 이런 선견지명(先見之明)에 힘입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 연구기관에도 연구원이 많지만 외교 국방 경제 국토개발 등 분야별로 나뉘어 있어 종합적인 국가 미래 전략을 연구하는 곳은 드물다. 더구나 일부 연구원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그치는 한계가 있다. KAIST 미래전략대학원은 이런 국책 연구기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기부가 한층 더 아름다운 이유다.
#기부#정문술#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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