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연혁]스웨덴 엘란데르 총리의 만찬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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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역대 가장 위대했던 지도자 중 하나로 꼽히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떠나보내면서 세계가 함께 울었다. 만델라는 1990년대 초까지 강력한 인종차별 정책의 희생양으로 27년간 복역하면서 고초를 당했지만 흑인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상류 백인사회의 시선은 싸늘했다. 만델라가 백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했던 이웃 나라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처럼 될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백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국가의 존립과 경제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인종 화합을 이끌어 내기 위해 흑인들이 그토록 반대하던 백인 스포츠인 럭비 세계대회를 유치했으나 백인들의 속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만델라는 먼저 럭비팀의 백인 주장에게 남아공을 위해 함께 일하자고 설득했다. 완강했던 백인 주장이 만델라의 조국 사랑의 마음을 읽고 동료 백인 선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조국에 우승컵을 안겨 주었다. 좌우 지역 갈등을 잊고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며 한국민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우리처럼, 남아공 흑인과 백인 국민도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

스웨덴에도 화합의 정치를 이룬 영웅이 있다. 바로 타게 엘란데르 총리다. 그는 45세에 총리에 올라 68세에 자진 하야할 때까지 23년 동안 재임하면서 스웨덴 복지를 완성했다. 재임 기간 중 치른 11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해 민주국가 정치인 중 가장 긴 연속 통치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젊었을 때 급진단체 회장을 지냈으며 사회 개혁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1946년 총리 직에 오를 때만 해도 그가 속한 사민당이 국유화를 통해 국가 전체를 사유화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팽배했다.

당시 스웨덴의 좌우 갈등은 지금 우리보다 더 심했다. 선거 때마다 좌우 논쟁은 국민을 둘로 갈랐다. 정점은 1948년 선거였다. 국민은 이 선거에서 좌우 당수의 불꽃 튀는 격돌을 목격해야 했다. 엘란데르 사민당 총리(좌)와 베르틸 올린 국민당(우) 야당 당수의 라디오 연설은 국가를 둘로 갈라놓았다. 야당인 국민당은 사민당이 집권하면 스웨덴이 공산주의 사회로 직행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엘란데르 총리는 선거 후 자신을 공격했던 50%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는 국가가 바로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총리의 급진적 사고방식에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던 재계(財界)의 마음을 얻어야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매주 목요일 만찬 때마다 재계 주요 인사들을 부르고 이어 노조 대표들까지 초청했다. 이후 이어진 만찬에서 재계와 노동계는 정치와 경제의 상생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목요클럽’이라는 노사정 상생 모델로 발전되었다. 엘란데르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은퇴 후 적적한 생활을 할 때 나를 찾아준 사람들은 동지도 많았지만 함께 국가의 미래와 경제 발전을 상의했던 재계 사람도 많았다. 그들과의 대화의 정치가 없었다면 경제성장도, 복지정책도 둘 다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서거한 후 그의 타계를 가장 애도했던 이들은 지지파뿐 아니라 반대파와 재계의 경제인들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요즘 한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배우고 싶어 하는 독일 모델도, 그리고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올랐던 네덜란드 모델도 핵심은 화합과 대화의 모델이다. 앙겔라 메르켈의 연립정치모델은 대화와 협상, 그리고 상대방 존중의 정치에 그 뿌리를 둔다. 네덜란드도 정당 간, 그리고 사회 주체 간 협약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노사 화합과 경제 성장을 이끌어 왔다. 정치 지도자들의 대화의 정치가 국가의 미래에 가장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의 미래는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하는 국민을 위한 정치여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박해했던 백인의 마음까지 얻은 만델라의 포용 정치, 숟가락 하나 더 얹어 시작한 경제인과 노동계와의 대화를 이끌어 낸 엘란데르의 만찬 정치, 독일식 화합 모델, 네덜란드식 대화 모델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아이디어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스웨덴#타게 엘란데르 총리#자본주의#국민당#사민당#목요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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