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념 내전 한국, 오스트리아에 통합의 길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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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안병영 지음/504쪽·2만8000원/문학과지성사

오스트리아 총리(재임 1970∼1983년)를 지낸 브루노 크라이스키. 그는 제1, 2공화국 형성의 주역인 카를 레너 전 총리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건국의 아버지로 꼽힌다. 저자는 이들이 “한국의 진보 세력에 큰 귀감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오스트리아 총리(재임 1970∼1983년)를 지낸 브루노 크라이스키. 그는 제1, 2공화국 형성의 주역인 카를 레너 전 총리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건국의 아버지로 꼽힌다. 저자는 이들이 “한국의 진보 세력에 큰 귀감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경제 성장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주로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과 영국을 연구한다. 이제 먹고살 만해졌으니 북유럽을 배워 탄탄한 복지를 구축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스트리아에 주목하자고 주장하는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오스트리아는 우리에게 예술과 낭만의 나라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오스트리아의 현주소를 보자.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2, 인구 848만 명(2011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4208달러(2012년), 그리고 경제성장률, 사회보장 수준, 고용률, 물가안정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저자는 “오스트리아는 중도개혁 정치를 통해 국가적 난제를 성공적으로 풀고 있다”며 “오스트리아 모델은 양극 정치의 여울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에게 적실성이 높은 제3의 모델”이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자유주의, 산업화, 민주화에서 모두 뒤졌고, 양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커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분할 점령됐고 심각한 공산화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는 통일, 경제발전, 노사협력, 복지국가 건설, 국민통합을 슬기롭게 이뤄내 알프스 산간의 약소국에서 강소국으로 우뚝 섰다.

그 성공 비결을 저자는 합의와 상생의 문화, 그리고 중도통합형 리더십에서 찾는다. 첨예한 이념 대립으로 점철되어 중도는 갈수록 빈약해지고 합의를 이뤄낼 공론장이 부재한 한국과 결정적으로 대비되는 점이다. 합의와 상생의 문화는 오스트리아의 전통이었다. 일찍이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 제국은 전쟁보다 정략결혼을 통해 영토를 넓혔고, 19세기 이후 제국 내의 치열한 민족 및 계급 갈등에 대해서도 억압 대신 타협으로 대응했다.

심각한 이념대립도 있었다.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1919∼1938년) 시절 좌우 간의 이념 양극화가 심해졌고 파시스트 정권을 거쳐 1938년 히틀러의 나치독일에 합병됐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1945년∼현재)에 들어와 10년간의 끈질긴 협상을 거쳐 1955년 ‘중립화 통일’을 이뤄냈다. 또 정치 지도자들은 제1공화국의 실패를 반성하면서 좌우가 협력해 국정을 관리하는 ‘합의제 정치’와 노사정이 협의를 통해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발전시킨다. 이 두 겹의 합의체제를 통해 오스트리아가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복지국가로 발돋움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합의제 정치의 대표적 사례가 대연정이다. 제2공화국 출범 이후 68년간 사회당 또는 사민당과 국민당 간의 대연정 기간이 41년, 소연정이 10년에 이른다. 2007년부터 사민당과 국민당의 연정도 지속되고 있다.

중도를 아우른 리더십으로 개혁을 이끌어낸 두 인물도 소개됐다. 두 차례 총리를 지내며 제1, 2공화국의 산파역을 했던 카를 레너, 1970∼1983년 총리로서 현대화에 공헌한 브루노 크라이스키다. 이들은 모두 온건과 관용, 타협과 상생을 추구했으며 사민주의자로서 노동자와 민생 문제, 복지에 정성을 쏟았다.

저자는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를 거쳐 교육부 장관을 두 차례 지냈다. 그는 1965∼1970년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해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 책을 쓰기 위해 2011년 여름 오스트리아에 머물며 자료를 모았다. 정년퇴임 후 설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그는 농번기에는 농사에 전념하고 농한기에 책을 썼다고 한다.

한국에는 낯선 오스트리아 모델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다만 학술논문처럼 딱딱하고, 현장감이 떨어지는 점은 아쉽다. 한국에 오스트리아 모델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한 장(章)을 할애해 풍부한 조언을 곁들였더라면 더 좋았겠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오스트리아#이념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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