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 살아보라더니… ‘전세형 분양’의 배신

동아일보 입력 2013-10-17 03:00수정 2013-10-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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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들면 구입안해도 돼” 홍보… 건설사 2년 되자 “계약금 반환못해”
소송 잇달아… 입주자가 빚 떠안기도
증권사에 다니는 박모 씨(53)는 2011년 초 서울 영등포구 일대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다가 허탕만 쳤다. 그러던 중 “전세금만 내면 새 아파트에서 2년간 살 수 있다”는 분양광고를 봤다.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2010년 4월 준공한 한 아파트가 미분양 물량을 이렇게 처분하고 있었다.

총분양금의 20∼30%만 내고 입주해 2, 3년간 살아본 뒤 아파트 구입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 있는 이른바 ‘전세형 분양’ 아파트였다. 박 씨는 분양가 13억 원인 전용면적 187m²에 3억3000만 원만 내고 입주했다. 박 씨 앞으로 소유권 이전등기도 됐다. 중도금 9억7000만 원에 대한 은행대출은 박 씨 명의로 이뤄졌지만 이자는 건설사가 대신 내주는 조건이었다.

2년이 지난 올 초 박 씨가 새 전셋집을 찾기로 하고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건설사는 “그럴 책임이 없다”고 했다. 계약서에 박 씨 앞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집을 처분할 경우 ‘건설사는 전매(새 주인을 찾아 소유권 이전)에 적극 협조한다’라고만 돼 있지 계약금 반환을 보장한다는 얘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2년 후 입주자가 원하면 계약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박 씨 등 전세형 분양 계약자 20명은 올 8월 회사를 상대로 계약금 반환 소송을 냈다.


‘전세형 분양’ 아파트의 소비자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 고양 용인 김포 파주시 등 미분양 물량이 많은 수도권에서 전세형 분양을 적용한 단지가 많아 이 같은 피해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태원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전세형 분양을 도입한 아파트는 전국 25개 단지(3만2541채)다. 이 가운데 부산 2곳을 제외한 23개 단지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미분양 무덤’으로 꼽히는 고양 용인 김포 파주에 절반에 가까운 12개 단지가 있다. 이 단지들은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2010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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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업체 관계자의 구두 약속과 실제 계약서 조건이 다를 수 있다는 점. 소비자들은 “조건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만기가 되자 건설사가 발뺌한다”고 하지만 건설사들은 “계약 조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소비자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더 큰 문제는 만기 때 건설사에 자금 여력이 없거나 부도가 날 경우 입주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다는 점이다. 건설사가 계약자 명의로 은행 대출을 받기 때문이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의 2866채 대단지 아파트는 2010년 전세형 분양으로 265가구가 입주했지만 건설사가 2년 뒤 부도나면서 이들은 계약금을 돌려받기는커녕 건설사가 은행에 진 빚까지 떠안아야 했다. 입주자들은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소유권마저 은행에 빼앗겼다.

전세형 분양 입주자는 세입자가 아니기 때문에 건설사가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해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갈 경우 임대차보호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문제도 생긴다. 김태원 의원은 “주택법에 전세형 분양에 대한 설명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전세형 분양#전세#아파트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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