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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한국 핵연료 농축-재처리 허용땐 미국 비확산 목표에 심각한 타격”

입력 2013-10-05 03:00업데이트 2013-10-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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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혼 전 美국무부 특보
“원자력협정 한국측 핵심 요구사항, 지금 당장은 수용하기 어려워”
사실상 美정부 의견… 협상 난항 예고
“미국은 현 단계에서 한국에 사용 후 핵연료의 농축·재처리 권한을 줄 의사가 없다. (그러면)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베트남 등 미국과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대기 중인 다른 국가들에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사진)은 4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하고 “농축·재처리를 한다 해도 당장 한국의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원전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농축·재처리 없이도 핵연료는 지금처럼 국제시장에서 공급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5월까지 미국 국무부 비확산담당 특보와 대북, 대이란 제재 조정관을 겸직하며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협상의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미국 내 ‘비확산 강경파의 맏형’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의 핵심 요구 사항을 묵살한 그의 발언은 미국 정부의 공식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협상에 극심한 난항이 예상되며 이는 한미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한국은 △사용 후 핵연료 처리 △안정적인 원전 연료 공급 △원전 수출 경쟁력 제고를 3대 협상 목표로 정하고 미국으로부터 농축·재처리를 포괄적으로 사전 승인 받으려고 노력해왔다. 또 한국의 원자력계는 미국과 공동연구 중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 기술을 상업화하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고속증식로의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고 밝혀 왔다.

이에 대해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이날 “2024년이면 한국의 핵연료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가 되는데 빨라야 2040년에야 상업화할 수 있는 파이로프로세싱은 핵연료 처리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원전 선진국인 미국 영국 등도 경제성이 없어 재처리를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안정성과 상업성이 검증된 ‘드라이캐스트(건식저장)’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핵무기 개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요청을 수용하면) 비확산이라는 한미 공동의 목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에 ‘절대 농축·재처리를 허용할 수 없다(never)’가 아니라 ‘지금 당장은 아니다(not now)’라는 것”이라며 “2021년까지로 예정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결과를 본 뒤 양국 협의를 거쳐 농축·재처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유예조항을 달아 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1988년 미일 협력협정을 개정하면서 일본의 농축·재처리 권리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당시 일본은 이미 농축·재처리 기술을 확보한 상태여서 아직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국과 위상이 달랐고 지금처럼 비확산에 대한 우려가 높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2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도 경제성이 없어 제대로 재처리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데 한국이 같은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당신을 비롯한 ‘비확산파’의 방해 때문에 한미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비난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양국의 원자력 협력을 적극 지지한다”고 반박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과 관련해 “제재의 효과가 새 이란 지도부에 ‘핵문제에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이 추구하는 핵-경제개발 병진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경제를 살릴 유일한 길은 비핵화뿐”이라며 “지속적으로 대북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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