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은 불법복제 고수님

동아일보 입력 2013-09-04 03:00수정 2013-09-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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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전공 제자들과 드라마 - 영화 실시간 녹화 →
美-加 교포들에 불법유통… 95억 챙겨
“월 회비까지 꼬박꼬박 냈는데 불법이었다고?”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대학에서 유학을 마친 임모 씨(27)는 “유학생활의 외로움을 버티게 해 준 힘은 한국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16세 때부터 홀로 미국에서 공부한 임 씨의 ‘친구’는 한국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이었다. 외국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고국이 그리울 때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드라마 ‘대장금’ 등 인기 방송물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봤다. 월 14달러(약 1만5000원)만 내면 한국에서 친구들이 보는 프로그램을 거의 동시간대에 볼 수 있었다.

말과 문화가 다른 해외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은 한국생활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한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뉴스 등을 즐겨 찾기 마련이다. 이런 교포들의 심리를 악용해 불법으로 국내 방송사의 방송 콘텐츠를 해외에 불법 유통시킨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조사 결과 사이트 회원들은 소정의 월 회비를 내고 한국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시청했다. 경찰은 “회비를 내기 때문에 불법인지도 모른 채 이용하는 회원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한국 지상파 방송 3사(KBS, MBC, SBS)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과 CJ엔터테인먼트사의 영화 등을 국내에서 무단 복제해 미국 캐나다 현지 교포들에게 불법 유통한 혐의(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김모 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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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컴퓨터 관련 학과 교수인 김모 씨(50)는 2006년 지인으로부터 “미국에서 한국 방송 한 편을 보려면 비디오 대여점에 나올 때까지 길게는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김 씨는 방송 프로그램을 웹하드에 올려 내려받는 시스템을 만들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제자 오모 씨(34) 등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이들은 우선 국내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컴퓨터에 TV 수신카드를 설치해 방송사들이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녹화했다. 이 녹화 파일들을 내려받은 뒤 바로 PC로 재생해 볼 수 있도록 인코딩(각종 정보를 재현시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태로 파일을 변환)해 웹하드에 올렸다. 방송된 지 15∼30분 후면 바로 내려받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이 국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구상한 전략은 치밀했다. 웹하드 서버를 사업 초기에는 국내에 두었지만 추적을 피하기 위해 미주지역(미국 캐나다)으로 옮겼다. 사이트 도메인은 2006년부터 최근까지 운영하는 동안 2번이나 바꿨다. 회원들로부터 받는 월 회비는 싱가포르에 소재한 결제대행사를 통해 수령했다. 이 자금들을 처리하기 위해 홍콩에 페이퍼컴퍼니 G사를 설립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의 사이트를 이용한 회원은 3만여 명. 경찰은 이로 인해 국내 3사 방송사 및 CJ사는 4200억 원 정도의 저작권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사 결과 현재까지 오 씨 등 일당이 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확인된 금액만 95억7490만 원에 달한다.

경찰의 적발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월 회비를 내고 시청한 것이라 불법인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미국지사에서 일하는 회사원 강모 씨(33)는 “방송사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돈이 많이 들고, DVD 대여점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니 시간이 아깝다”며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공공연히 웹하드를 이용한 불법 다운로드로 한국 방송을 시청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불법유통#방송콘텐츠#국제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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