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증권사 애널리스트 잔혹사

동아일보 입력 2013-08-17 03:00수정 2013-08-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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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주 족집게는 옛말… 펀드매니저 모시기에 바빠”
고액 연봉과 뛰어난 전문성 등으로 각광을 받았던 직종인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다. 증시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혹독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 사이에는 유용한 투자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7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사무실을 찾아갔던 애널리스트 A 씨는 깜짝 놀랐다. 다른 애널리스트 5명이 사무실 앞에 줄을 서 있었던 것. 10분이 채 지났을까. A 씨 차례가 돼 종목 설명을 시작하려 하자 펀드매니저는 “1분 안에 브리핑을 끝내 달라”고 요구했다. 애널리스트 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보통 사람은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를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겠지만 이 업계에서 펀드매니저는 갑, 애널리스트는 을이다. 그런 애널리스트지만 적어도 ‘1분 브리핑’이라는 굴욕적인 대접은 여태껏 받지 못했다.

애널리스트는 기업을 분석하고 펀드매니저에게 해당 종목을 추천하는 일을 한다. 펀드매니저는 종목이 유망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추천한 애널리스트가 속한 증권사에 주식 매매 주문을 낸다. 이런 주문을 많이 따올수록 유능한 애널리스트로 대접받는다.

A 씨는 “예전에는 펀드매니저와 식사하며 종목 얘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영업이 됐는데 펀드 운용 규모가 줄다 보니 주식 거래 물량을 잡기가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펀드매니저가 얘기를 듣자마자 솔깃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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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극심한 침체를 겪으며 애널리스트들이 설 곳이 사라지고 있다. 한때 이들을 수식하는 말이었던 ‘주식시장의 꽃’ ‘고액연봉의 대명사’는 이제 옛말. 구조조정의 칼끝이 이 집단으로 향하면서 ‘공부하러’ ‘쉬러’ ‘회사를 차리려고’ 비자발적 변신을 하는 애널리스트들도 늘고 있다.

떠나는 사람들


토러스투자증권은 회사 사정이 기울면서 지난해 말 25명이었던 애널리스트가 현재 7명만 남았다. 애널리스트가 7명이면 대부분 업종의 분석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2008년 38세에 ‘최연소 리서치센터장’이 돼 화제를 모았던 황상연 전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조만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투자자문사를 차려 펀드매니저로 변신했다. 애널리스트가 펀드매니저로 변신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모두 애널리스트업계에 불고 있는 ‘찬바람’을 대변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혹한기를 겪기 전만 해도 애널리스트는 선망 받는 직업 중 하나였다. 애널리스트가 고소득 전문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무렵. 외환위기 이후 주가가 급등하고 벤처 투자 붐이 일면서 애널리스트 몸값이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같은 업종이라도 ‘날아가는’ 종목만 날아가다 보니 ‘잘 찍는’ 애널리스트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한 해에 애널리스트의 연봉이 2, 3배로 올랐던 시기도 이 즈음이다. A급 애널리스트의 연봉은 2억 원가량이었다. 당시는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 82.6m²가 1억8000만 원 하던 시절. 한 해 연봉이 강남 아파트값보다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전 증시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2007년에는 A급 애널리스트의 몸값이 7억 원까지 치솟았다. 1993년 32개였던 증권사 수가 2001년 64개로, 정확히 두 배로 증가하면서 애널리스트 영입 경쟁이 불붙었던 것도 연봉이 급등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0년 말 1575명이던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말 현재 1421명으로 154명이 줄었다. 10%나 감소한 것이다. 떠난 애널리스트의 상당수는 연차가 10년 이상이다. 리서치센터를 운영하는 비용은 대형사의 경우 연간 50억∼100억 원으로,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이려면 연봉이 높은 고참 애널리스트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증권사들이 비용 줄이기에 나선 건 증권사 수익이 형편없이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증권사 4∼6월 영업실적은 대부분이 마이너스, 수익을 올린 증권사는 약 10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전년 동기 대비 80∼90% 수익이 줄었다.

“분석보다 영업이 더 중요”


애널리스트의 연봉은 회사별로 15∼20% 삭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에 따라서는 50%나 줄어든 경우도 있다. 미혼인 한 30대 남성 애널리스트 B 씨는 “미래가 워낙 불투명하다 보니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연봉만 줄어들었다면 그래도 나았을 것이다. 문제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점점 사라지는 환경에 처한 것이다.

일단 업무량이 늘었다. 한 대형 증권사의 경우 기관투자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설명회 횟수가 3년 전 연간 2000여 회에서 지난해 4600여 회로 뛰었다. 전국 곳곳의 지점을 다니며 설명회를 하는 일도 다반사다. 애널리스트 C 씨는 “수시로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기업 탐방을 통해 깊숙이 분석하는 리포트를 작성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애널리스트가 기업 분석이라는 본업보다는 아예 해당 기업 담당자와 펀드매니저를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할만 하는 경우도 늘었다. 애널리스트 D 씨는 “과거에는 펀드매니저와 기업 담당자를 소개해주면 같이 어울렸지만 요즘은 애널리스트가 사무실 밖에 나가 있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며 “펀드매니저가 해당 기업 정보를 ‘독점’하고 정작 애널리스트는 ‘메신저’ 역할만 한다”며 씁쓸해했다. 이처럼 애널리스트가 기업 분석보다 영업에 더 치중하다 보니 ‘애널커(애널리스트+브로커(영업맨))’, ‘브로키스트(브로커+애널리스트)’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법인카드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지는 오래다. 애널리스트 E 씨는 “예전에는 펀드매니저를 접대할 때 1차에 식사하고 2차로 룸살롱에서 양주 마시고 3차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1차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 약속을 잡거나 차 한 잔 마시는 걸로 대신하기도 하고 그냥 박카스를 사 들고 찾아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혹독한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증권사 경영진의 눈총을 받기 싫어서, 아무리 기업 사정이 안 좋아도 “매수하라”고만 할 뿐 “매도하라”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사실 ‘매도’ 보고서를 내는 순간 해당 기업에서 애널리스트에게 정보 제공을 거부하고 증권사에 맡긴 돈을 빼는 등 유형 무형의 압박을 가한다. ‘한철 장사’를 할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기업을 관리하고 경영진의 눈치를 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측면에서 애널리스트들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애널리스트는 기업이 아니라 투자자들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인 만큼 주가가 떨어질 때는 투자자들을 위해 과감히 매도 의견을 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 내부에서도 자신들이 이런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다면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투자자들이 애널리스트를 감싸줬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애널리스트가 통찰력을 갖고 깊이 있는 분석을 한다면 애널리스트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융시장에서 애널리스트 없이 투자하는 것은 깜깜한 밤에 불빛 없이 다니는 것과 똑같다”며 “새로 생겨나는 산업을 분석하고 시대에 맞는 역할을 찾아낸다면 애널리스트들의 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직업의 일생’으로 보자면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를 지났다는 시각도 있다. 한때 건설역군이, 종합금융사(종금사) 직원이나 투신사 직원이 그랬듯 취업준비생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었다가 다른 직종에 자리를 내주는 자연스러운 교체기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주식거래 수수료가 수익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는 증권사들은 증시 침체가 장기화하는 한, 수수료가 거의 없어 ‘공짜’나 다름없는 온라인 혹은 모바일 거래가 확산되는 한 과거와 같은 수익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영광은 사라져도 직업은 남는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애널리스트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한 증권사 경영담당 임원은 “애널리스트가 국내 주식만 분석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해외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돈이 되는 투자 대상을 모두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삼성전자 팔고 구글 사라’는 식의 리포트가 나와야 한다는 것. 그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돈 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애널리스트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손효림·이원주 기자 aryssong@donga.com

#증권사#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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