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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대기업 떠나자 중소체인이… 동네빵집 또 운다

입력 2013-07-30 03:00업데이트 2013-07-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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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던 김모 씨(43)는 최근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을 닫았다. 길 건너편에 ‘대기업 빵집’이 있긴 해도 지난해까진 500원짜리 단팥빵, 곰보빵이 맛있기로 소문나서 월 매출 2000만∼3000만 원은 거뜬히 올렸다.

하지만 올해 초 300m 떨어진 곳에 ‘기업형 중소 빵집 체인’이 들어선 뒤 갑자기 사정이 나빠졌다. 이 빵집은 김 씨 가게와 비슷한 값에 빵을 팔았고 제품은 훨씬 다양했다. 특히 연예인을 내세워 광고까지 하는 데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김 씨는 “정부가 골목 상권을 살리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집중적인 규제를 받으면서 ‘빵집 골목 상권’에 예기치 못한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대기업 빵집 대신 기업형 중소 빵집이 빠르게 성장해 동네 빵집을 위협하고, 대기업 빵집이 들어선 건물의 임대료는 급상승하고 있다.

29일 제빵업계에 따르면 기업형 중소 빵집인 ‘잇브레드(Eat.Bread)’의 가맹점은 6월 말 현재 70곳으로 지난해 말(30곳)보다 133% 늘었다. 기업형 중소 빵집인 ‘이지바이(Easy Buy)’ 가맹점도 같은 기간 100곳에서 120곳으로 20% 늘었다. 이들 체인은 대기업 빵집의 반값 수준에 빵을 팔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의 가맹점은 공정거래위원회와 동반성장위원회로부터 각각 기존의 자사 빵집이나 동네 빵집에서 500m 이내에 가게를 개설하면 안 된다는 등 출점(出店) 규제를 받지만 기업형 중소 빵집은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의 가맹점은 올 상반기(1∼6월) 각각 0.97%, 0.6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기업형 중소 빵집들이 저가로 빵을 판매해 동네 빵집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빵집 주인으로 봐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규제를 틈타 확장 일로에 있는 기업형 중소 빵집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한 셈이다.

이 밖에도 빵을 일부 판매하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점포는 지난해 477곳에서 6월 말 531곳으로 올 상반기 54곳(11.3%)이 늘었지만 프랜차이즈가 아닌 직영(直營)이라는 이유로 출점 규제를 받지 않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중에도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지방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는 서모 씨(48)는 최근 건물주의 ‘내용증명’을 받았다. 임차료를 두 배로 올려주지 않으면 명도소송(明渡訴訟)을 제기하겠다는 것. 건물주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500만 원인 임차료를 보증금 2억 원, 월세 1000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했다. 대기업 빵집 가맹점의 위치 규제 때문에 다른 장소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것. 서 씨는 “1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온 곳이어서 건물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빵집 알박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 빵집인 A사 점포 개발 담당자는 신규 점포 개설지를 간신히 정하고, 점포 계약을 위해 해당 지역을 다시 찾았을 때 맞은편 빈 점포에 ‘빵집 개점 예정’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소문 끝에 이 점포의 주인을 찾아낸 그는 숨이 턱 막혔다. 그가 대기업 프랜차이즈 출점 규제를 거론하며 ‘보상금’을 요구한 것. 이 담당자는 “대기업 빵집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돌자 이를 악용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이 빠져나가도 경쟁력이 없는 빵집은 언젠간 다른 경쟁자를 만나 무너질 수밖에 없다”면서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경쟁력 있는 업체의 손발 묶기보다는 ‘경쟁력 강화’에 집중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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