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동주]男權을 대변한다며 몸던진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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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주 사회부 기자
조동주 사회부 기자
“여성들이 자꾸 ‘전용’을 주장하는 건 여성 스스로 약자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수화기 너머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기자는 4월 3일 전남 보성녹차휴게소의 ‘여성 전용 흡연구역’ 논란을 취재하면서 성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당시 성 대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전용 주차장, 버스좌석, 임대주택을 만들어 주면서 ‘여성 전용이 트렌드’라고 말한다. 이 나라 여성정책은 너무나 잘못됐다”고 개탄했다.

기자는 버스를 탈 때 핑크색 덮개가 씌워진 여성 전용 좌석을 피해 빈자리를 찾을 때마다, 꽉 찬 주차장에서 핑크색 선으로 그어진 큼직한 여성 전용 구역을 보고 그냥 지나쳐야 할 때마다 성 대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여성 운전자나 취업준비생 등을 볼 때면 아직 남성인권운동이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 대표는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남성도 약자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남성으로서의 의무’에 짓눌려 온 남성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했다. “여성은 결혼할 땐 비용 분담을 남성 8 대 여성 2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혼할 땐 5 대 5를 요구한다” “여성은 방송에서 공공연히 남성의 근육질 몸을 마구 더듬지만 남성은 여성의 손끝만 스쳐도 성추행범으로 몰린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돈 버는 기계’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가장이나 데이트 상대 여성에게 쉽게 더치페이를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에 분노했던 남학생 등이 지지를 보냈다.

처음으로 남성인권보호 시민단체를 만든 그는 자존심이 강했다. “가난하지만 당당히 운영하겠다”며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았다. 후원금으로만 남성연대를 운영하면서 ‘싱글대디 반찬배달’ ‘무료 법률지원 서비스’ 등 돈 드는 사업을 이어 가다 보니 재정난에 부닥쳤다. 남성연대는 2011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각종 행사 비용 등으로 2억4670만 원을 썼다. 하지만 후원금 수입은 1956만 원에 불과했다. 적자는 대부분 그의 개인 빚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 대표는 25일 “남성연대에 1억 원만 빌려 달라”며 한강 투신을 예고한 뒤 실제로 하루 뒤 서울 마포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투신 예고 후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며 투신을 강행했다. 생명을 담보로 한 그의 투신은 결코 미화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억눌린 남권(男權)의 잔다르크’였든, ‘찌질한 남성주의에 젖은 돈키호테’였든 공개리에 이뤄진 그의 어처구니없는 비극 앞에서는 비판보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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