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몸에서 길어 올린 죽음에 대한 깨달음

동아일보 입력 2013-06-24 03:00수정 2013-06-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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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년 김명인 시집 ‘여행자 나무’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은 시인 김명인(67)이 열 번째 시집을 내놨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429호로 출간된 ‘여행자 나무’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소월시문학상, 이산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의 지난 40년 시 세계를 관통한 것은 ‘몸의 기억’이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시인은 6·25전쟁 발발에 따른 무의식 속 화인(火印), 전쟁 통에 가족과 단절되면서 깊이 새겨진 정신적 상흔, 고향을 잃고 부랑의 운명을 걸머진 채 헐벗은 몸으로 길 위에 선 이들을 노래해왔다.

1979년 첫 시집 ‘동두천’에서 진흙탕 속에 잠긴 ‘더러운 그리움의 세계’를 육화해냈던 그는 2002년 ‘바다의 아코디언’과 2005년 ‘파문’을 통해 시간과 기억이 우리 몸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그려냈다.

‘여행자 나무’에선 어느덧 노년이 된 시인이 자신의 몸에서 길어 올리는 깊은 어둠(죽음)에 대한 깨달음이 담겼다. ‘난 아직 날개 못 단 새끼라고/말씀드리면 머지않아 내 살도 새털처럼 가벼워져 푸른 하늘에 섞이는 걸까?/털리는 것이 아니라면 살은 아예 없었던 것/이승에서 꿔 입는 옷 같은 것’(시 ‘살’에서)이라며 쇠잔해가는 몸을 수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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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젊은 시절의 삶은 불꽃처럼 작렬하는 빛으로 표현돼 있다. ‘되는 대로 미끄러져가며 터뜨렸던/내 삶의 어떤 폭죽들’(시 ‘살이라는 잔고’에서)

실향의 아픔과 방랑의 운명을 상징하던 ‘길’의 이미지는 여전하다. 하지만 몸에 새겨진 상처들과 그 방랑의 시절마저 따뜻이 품는 넉넉함을 보여준다.

‘아직 행려의 계절 끝나지 않았다/어디로도 실어보지 못한 신생의 그리움 품고 나무의/늙은 가지에 앉아/몸통뿐인 새가 울고 있다’(시 ‘여행자 나무’에서)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김명인 시집#여행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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