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특별 기고/신기욱]미국은 지쳤다, 한국이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 입력 2013-02-18 03:00수정 2013-02-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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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소장
예상대로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아직 정확한 내용과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소형화나 대량생산의 길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여 북핵 위협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로켓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하는 수준이 되면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에 볼모로 잡히고 국가 안보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더라도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안은 얼마 전에 발표된지라 몇 가지 제재를 추가하더라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중국은 북한에 불만을 표시하는 ‘립 서비스’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이 없는 한 북한은 핵실험을 지속할 것이며 기술은 점차 발전할 것이다. 또한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북한을 ‘실질적인 핵국가’로 인정하자는 현실론이 힘을 얻을 것이고 북한은 군축협상을 하자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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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북한을 ‘실질적인 핵 파워(real nuclear power)’로 규정하였으며 북한의 핵시설을 시찰한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주장하는 ‘3 no's(no more bombs, no better bombs, no exports·북한이 더이상 새로 핵을 못 만들게 하고, 더이상 성능 좋은 것을 못 만들게 하며, 핵무기가 타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자는 주장. 이왕 있는 것은 인정하자는 현실론)’ 역시 북한을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안이다. 중국에서도 이러한 현실론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으며 북한은 지난해 개정한 헌법에서 아예 ‘핵보유국’임을 명시하였다.

그런데도 한국은 “북핵을 용인할 수 없다”며 “국제 공조를 통한 대북 제재”라는 공허한 원칙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핵 문제를 다룰 마땅한 틀이나 프로세스가 없으며 미국이나 중국이 북핵 ‘관리’를 넘어서서 ‘해결’에 적극적일 가능성도 적다.

6자회담은 휴회한 지 오래되었고 이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별로 없다. 미국은 산적한 외교 안보 현안으로 북핵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피로감만 쌓여가고 있다. 중국도 북핵은 원치 않으나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외면할 수 없다.

이달 15일 필자가 재직하는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에서는 미국 정부와 의회의 전현직 관료를 포함한 20여 명의 전문가가 모여서 대북정책을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윌리엄 페리, 스티븐 보즈워스, 조지프 디트라니, 에번스 리비어 등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전직 고위 관리들이 참석하여 자신들의 경험을 회고하고 북핵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회의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이제 북핵 문제는 미국이나 중국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의 문제이며 한국의 차기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것을 주문하였다. 지난 20년간 북핵 문제를 다루어 오면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데 대해 미국은 지쳐 있으며 한국이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간 한국은 북핵 해결을 위해 앞장선 적이 없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는 북-미 간 협상을 옆에서 바라봐야 했고 2002년 이후 불거진 2차 위기 때는 미국이 중국을 내세워 6자회담을 만들었지만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이젠 한국이 북핵 해결에 적극 나설 때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말하는 신뢰 프로세스가 됐든, 1990년대 말 미국이 주도했던 페리 프로세스의 변형이 됐든 더 늦기 전에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미국 중국 등의 협조를 얻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북핵의 가장 큰 위협은 한국이며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다.

박 당선인에게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우선적으로 북한 문제를 다룰 특사를 임명할 것을 제안한다.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 특사로 임명해 페리 프로세스를 진행하였듯이 대통령이 신임하고 여야를 아우를 수 있는 경륜 있는 외교 안보 전문가를 임명하여 북핵 문제 해결에 매진해야 한다.

특사 활동을 통하여 미국 중국 등과의 공조는 물론이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도와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시급하며 그에 따라 향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성급한 핵무장론은 북핵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파키스탄이나 북한 수준으로 격하시킬 것이다. 또한 한미동맹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악화시킬 뿐이다.

또한 특사활동과 함께 북핵 문제를 다룰 틀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한반도 평화에 가장 중요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동시에 다룰 수 있도록 남북한과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 중국을 포함한 4자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즉 평화체제로 북한의 안보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추진 방식으로는 북한의 입장인 선(先) 평화체제, 후(後) 비핵화와 미국의 입장인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가 대립하므로 이 두 사안을 동시에 추진하되 평화체제 구축의 속도는 비핵화 진전 속도에 동조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최종 목표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북-미 수교는 물론이고 평화협정 체결, 북한 인프라 건설, 자원개발, 에너지 지원을 포함한 대규모 경협 등을 한다는 큰 틀에 합의한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다.

올해가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평화협정 체결은 상징적인 의미도 클 것이다.

북핵 해결에는 무엇보다도 최고 지도자의 강한 신념과 의지 그리고 북한과의 상호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했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닉슨이 투철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공산국가인 중국에 과감한 제안을 하고 보수층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 보수를 대표하는 박 당선인 역시 북한과의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이 지나치듯 한 말이 아직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태평양을 넘어 갈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듯싶어 안타깝다고.

북핵 해결은 누구의 문제도 아닌 한국의 문제이며 더이상 지체해선 안 된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소장
#미국#한국#북한#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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