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오]나로호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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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마침내 세 번째 도전 만에 나로호가 하늘을 날던 날, 나는 기쁨과 함께 십수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1999년 12월 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이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계수조정소위 위원으로 2000년도 국가 예산의 마지막 조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2005년 인공위성 국내 발사를 목표로 우주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었다. 그런데 그해 6월, 정부 부처 연구개발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종합조정기능을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이 사업이 우선도나 시급성에서 떨어진다며 최하위 등급을 매겼다. 이에 따라 당시 기획예산처는 과학기술부가 요청한 우주발사장 설계비를 전액 삭감했다.      
10억 예산으로 시작한 우주의 꿈     

그때는 이미 우주센터 제1후보지로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가, 제2후보지로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해수욕장 인근이 물망에 오른 상태였다. 첫 사업으로 우주센터를 짓기 위한 설계비가 필요했으나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이다. 당연히 2000년도 예산안에는 그런 기초 비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우주를 향한 첫걸음은 고사하고 꿈조차 꾸지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막바지 예산안 조정이 한창이던 때라 나는 과기부에 “추가할 사업이 있으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과기부가 추가로 보낸 30여 가지의 사업 목록 중 ‘우주발사장 건립’ 항목이 눈에 띄었고 이 사업을 위해 작지만 10억여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미 국가가 추진하던 사업이었고,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정작 기뻐할 줄 알았던 과기부가 우주발사장 설계비가 예산안에 반영되자 부랴부랴 찾아와 “그 사업은 시급하지 않으니 다른 사업으로 대체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과기부는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장기 사업보다는 당장 처리해야 할 사업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당시 과기부는 우주센터 건립 사업의 주무부처이면서도 너무 안이하고 소극적이었다. 예산안이 전액 삭감됐을 때에도 “다음 해를 기약하겠다”며 느긋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언론과 국민에도 추후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우주발사장 사업이 왜 필요하고 우리 군사·안보·경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원성을 듣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했고 과기부는 예정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시 국회의 노력으로 우주발사장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를 위한 이 예산이 배정되지 못했다면 지금 온 국민을 감격하게 한 나로호는 사업 자체가 표류하거나 몇 년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지만 당시 예산안 통과는 언론의 주목을 그다지 받지 못했다. 아마도 다른 큰 국책 사업이나 정책이 많아 예산이 고작 10억여 원에 불과한 이 사업의 의미를 알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이 사업이 국민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 청와대 발표를 통해서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우주센터를 짓고 우주시대를 연다’는 기사가 전 언론을 장식한 것이다. 내가 알기로 당시 청와대에서는 새로운 밀레니엄 해(2000년)를 맞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예산안 통과를 뒤늦게 보고받고 이를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발표의 크기에 비해 정작 그해 사용할 예산은 전해에 국회가 통과시킨 10억여 원이 전부였다. 그랬던 것이 지금 온 국민의 희망이 된 ‘나로호’가 된 것이다.        

달나라 여행, 또 씨앗 뿌려야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씨앗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14년 전 불과 10억 원의 예산으로 시작한 나로호가 지금 대한민국의 우주로의 꿈을 키웠듯이, 또 언젠가는 지금의 노력으로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송편을 먹을 날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날을 꿈꾸며 우리의 하늘을 바라본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나로호#우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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