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가시, 업종 가시, 지역 가시… 중소기업인들이 말하는 ‘손톱 밑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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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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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중소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를 빼주는 정부가 되겠다고 하자 중소기업과 중기 관계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작지만 부당한 규제’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감을 나타냈다.

조유현 중소기업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은 “역대 정부가 ‘큰 덩어리’ 위주로 규제 완화를 다뤄 주로 대기업 규제를 푸는 쪽이었다”며 “중소기업들에 심각한 사안은 상대적으로 묻힐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도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느끼는 규제는 환경, 위생, 건축, 노동 분야 등 다양하고 세부적인데 그동안 규제 완화는 세부적인 것보다 대기업이나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무게를 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중앙회는 중기 관점에서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규제들을 조사해 다음 달 인수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 “수도권·세종 공무원들은 모를 것”

동아일보는 8일 일선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옴부즈만실을 취재해 ‘손톱 밑 가시’에 해당하는 작은 규제들이 뭔지 들어봤다. 옴부즈만실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파악해 해당 기관에 개선을 요청하는 기관이다.

섬유업종 중소기업들은 “공장으로 쓰기 위해 근린생활시설 건물 일부를 임차해 용도변경을 하려는데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비상구, 유도등, 소화기까지는 설치할 수 있지만 스프링클러는 공사비가 부담스럽다”고 호소했다. 주물·주조업체들은 “화공약품을 많이 써 악취가 난다는 편견 때문에 공단 입주가 어렵다”고 했고, 의류업체들은 “해외 공장에서 만든 견본을 하루라도 빨리 들여와 바이어에게 보여야 하는데 간이통관 하려면 옷에 구멍을 뚫으라고 한다”며 시정을 요청했다.

7일부터 본격 단속이 시작된 정부의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에 대해 압출기기를 사용하는 중소업체들은 “특정 피크시간대에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재가동하면 적잖은 예열 시간이 걸리는 데다 불량률도 현저히 증가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들은 “의무적으로 서울에 있는 협회에서 집체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정말 실정을 모르는 규제”라며 “인터넷 강의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방 기업들은 수도권이나 세종시의 당국자들이 알기 힘든 현장의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강원 철원의 중소기업들은 “접경 지역이라 행정업무를 처리할 때 군 당국과 협의해야 하는 게 고충”이라고 말했다. 충남 부여의 한 중소기업은 “건물을 짓다 문화재가 나오면 공사가 늦어지는 것도 모자라 발굴 비용도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울릉도의 여객선 관련 업체들은 “여객선 운항 일정을 날씨에 따라 수시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일일이 항만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 “선진국 수준의 기준, 못 따라가”

정부가 환경과 노동 분야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청렴이나 국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규제들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영세업체도 많았다. 세탁소 업주들은 “드라이클리닝 과정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수거하는 회수건조기 설치가 의무화됐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화원(花園)들은 “공무원 경조사 선물을 3만 원 이내로 하라는 규정은 사실상 화환은 보내지 말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농공단지 공장들은 “석면 처리 비용 부담이 커 지붕에 함석을 설치해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미용업계는 의료법을 고쳐 피부미용실에서 적법하게 초음파기기나 박피기기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오랜 민원이다. 쌀 가공업체들은 “쌀뜨물이 폐수로 분류되는 바람에 배출 전 폐수처리시설을 거쳐야 한다”며 “일반 공장 폐수와 똑같이 분류되는 현 규정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제업체들은 “저임금 노동자를 찾는데 대상자들이 취업하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잃을까 걱정하는 일이 많다”며 “예외 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식당에서 아파트에 전화주문용 스티커를 붙이면 경범죄에 해당하고, 가스 배달원이 식당 앞에 잠깐 오토바이를 세워도 교통 위반”이라며 “이런 작은 규제는 민생 차원에서 편의를 봐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은 “중소기업 규제 완화 문제는 관련 부처가 많아 한 번에 풀리는 일이 없다”며 “애정을 갖고 끈질기게 현장을 누벼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지영·장강명 기자 jjy2011@donga.com
#중소기업#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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