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노화원인 1%도 못 찾았다

동아일보 입력 2012-12-08 03:00수정 2012-12-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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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원인 1%도 못 찾았다
한 걸음도 못 나간 ‘수명연장의 꿈’ 현주소를 말한다
인간은 늙고, 죽는다. 하지만 과학기술과 의학은 사람이 왜 늙는지, 왜 죽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건강히 오래 살기를 꿈꾸며 영생의 경로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애쓴다. 이제 죽음과 영원한 삶을 함께 연구해야 할 때다. 멀티비츠·내셔널 지오그래픽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부리깡 므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바둑이는 돌돌이.”

6일 해병대 복무를 마친 배우 현빈이 입대 직전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했던 대사다. 모두 65자로 된 이 단어는 사실 30여 년 전 TV 코미디 속에 나온 어떤 남자 아이의 이름이다. 손이 귀한 집에서 늘그막에 대를 이을 아들을 낳은 부모가 아이의 장수(長壽)를 염원하며 지었다는 설정이었다. 이 이름은 동서고금, 현실과 신화를 통틀어 오래 살았다는 사람과 동물, 자연현상과 천적 관계 등을 짜깁기한 산물이다. 한 번에 끝까지 부르기에 숨이 가쁜 성명을 받은 이 아이는 콩트 속에서 수명 연장의 꿈을 이뤘을까. 결과는 이 글의 끝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므두셀라다. 구약성경 ‘창세기’ 5장 21∼27절에 나오는 므두셀라는 방주(方舟)를 만든 노아의 할아버지다. 그는 969세를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 상식으로는 영생(永生)에 가까운 삶이다. 그 므두셀라를 현세에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식(小食)이 답이다?
이철구 교수(고려대 생명공학부·노화생물학 전공)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생쥐 네 마리를 찍은 컬러 사진이 떠올랐다. 오른쪽 두 마리는 왼쪽 두 마리에 비해 크기가 현격히 작고, 듬성듬성 색 바랜 털은 윤기도 심하게 떨어진다. 네 마리 모두 사진을 찍을 당시 생후 3년 정도 됐다. “얼마 못 가서 오른쪽 두 마리는 죽었어요. 하지만 왼쪽 두 마리는 8개월에서 12개월까지 더 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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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의 최대수명은 3년 정도다. 이들 두 쌍의 수명 차이를 가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사진 오른쪽 두 마리 위로는 화살표가 쳐져 있고 ‘ad libitum’이라고 적혀 있다. 왼쪽 두 마리 위에는 역시 화살표가 쳐져 있고 ‘CR’라고 쓰여 있다. ad libitum(애드 리비툼)은 동물이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했다는 뜻이다. CR는 칼로리 제한(Caloric-Restriction)을 뜻한다. 그러니까 열량을 줄인 식단, 다시 말하면 적게 먹였다는 말이다.

“칼로리 제한은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수명 연장의 방법입니다.” 1999년 미국 위스콘신대 박사과정 시절 이 생쥐들을 가지고 행한 칼로리 제한 실험 논문으로 미국 노화(老化)생물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이 교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히 오래 살고 싶은, 즉 수명 연장의 연구는 사실상 노화 연구다. 노화를 어떻게 하면 지연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서는 역전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국에서는 2000년 벤처사업가 데이비드 고벨이 영국의 이론 생물학자 오브리 드 그레이와 수명 연장 실현을 목표로 비영리인 ‘므두셀라 재단’을 만들었다. 이 재단은 특히 ‘므두셀라 생쥐’를 키워낸 연구자에게 상금을 주고 있다. 므두셀라 생쥐는 말 그대로 보편적 상식을 뛰어넘어 오래 산 생쥐다. 지금까지 이 상을 탄 최장수 생쥐는 5년을 살았다.

문제는 생쥐에게는 효과가 있는 칼로리 제한 요법을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느냐다. 적게 먹고 체내의 칼로리를 적게 소비하는 이 방법은 다이어트라고 볼 수 있다. 영국노화연구협회(BSRA) 회장인 리처드 파라거 브라이턴대 교수는 지난해 과학기술 전문방송 디스커버리채널이 펴내는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90%는 길어야 18개월 안에 포기하고 만다”며 칼로리 제한 요법의 현실성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영장류인 원숭이를 대상으로 칼로리 제한 실험을 했더니 결과가 기대와 달랐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도 있다.

칼로리 제한 요법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입증되지 않았다. 그 증명은 사실상 쉽지 않다. 왜냐하면 칼로리 제한이 인간의 수명 연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려면 실험 대상자가 죽을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소한 칼로리 제한 요법이 인간에게 해롭지 않고 오히려 건강지표를 향상시킨다는 것은 실험으로 증명돼 있다. 2006년 티머시 E 마이어 등이 발표한 논문이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35∼82세(평균 53세) 남녀 25명을 대상으로 칼로리 제한 실험을 벌였다. 대상자별로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5년간 서양 성인의 하루 평균 칼로리 섭취 권장량(2000∼3000Cal)의 약 65%만 먹도록 했다. 실험 결과 대상자들의 수명이 연장됐는지에 대한 답은 구할 수 없었지만, 혈압이 떨어졌고, 혈당수치가 낮아졌으며, 면역반응이 향상됐다.
▼ “피부-정력개선” 내걸고 유행하는 회춘주사는 근거없어 ▼

노화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합의된 이론은 아직까지 없다. 다만 노화는 삶의 정상적인 과정일 뿐이다. 국립과천과학관에서 한 어린이가 세포와 유전자 모형 안에 앉아 있다. 과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세계적으로 본격적인 노화 연구가 벌어진 지는 50년 가까이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유효한 것으로 밝혀진 노화 억제나 지연의 방법이 한 손으로 꼽을 만하다는 점은 수명 연장의 길이 지난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수명 연장의 왕도는 없다
“인체에 내재된 노화 프로그램이 100이라면 인간은 그중 1%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정지형 교수(연세대 의대·혈관 노화 및 세포 노화 전공)가 말했다.

노화가 무엇인지, 왜 늙는지, 언제부터 노화의 길로 접어드는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 우리 인간은 확실한 답을 내지 못한다. 당연히 왜 인간이 다른 종에 비해 급속히 노화하는지, 왜 사망률이 극적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노화는 향후 더 지연되거나 억제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정 교수는 “‘왜 죽는가’의 문제보다는 세포가 내·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인체에 내재된 일부 노화 프로그램을 변형해서 늙는 것을 저하시키는 연구, 즉 피부 노화 방지나 노화에 동반된 질환 연구는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과학과 의학의 수명 연장 연구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또는 검증되기 어려운, 수명 연장에 대한 각종 처방과 요법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결혼을 앞둔 동료 기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수명 연장은 물론이고 각종 질병을 고쳐준다”며 가져다준 물 2병을 놓고 마셔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부유층 노년 남성을 중심으로 일명 ‘회춘 주사’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자신의 줄기세포를 뽑아 배양한 다음 정맥에 다시 주사해 투입했더니 피부가 좋아질 뿐 아니라 성(性) 기능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줄기세포를 뽑아 정맥에 바로 주입하는 것은 단순한 의료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를 배양, 증식시켜서 몸에 재투입한다면 이는 약에 해당한다. 따라서 적어도 10년의 임상실험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회춘 주사가 그런 과정을 거쳤을 리 만무하다.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신약개발 줄기세포연구사업단 단장)는 “줄기세포 때문에 직접적으로 노화가 억제되고 수명이 연장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현 단계에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지나친 비약이며 과장”이라고 말한다.

다만 운동을 하면 우리 몸의 뇌 같은 곳에서 신경줄기세포가 더 많이 활성화되고, 신경세포 생산도 촉진된다. 이렇게 되면 운동을 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수명도 연장할 수 있고 건강을 더 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헌팅턴병 같은 퇴행성 질환이 염려되는 사람에게는 운동으로 세포를 활성화시켜 질병 발생을 늦추거나, 발병을 하더라도 병의 진전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수명 연장의 간접적인 효과는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8월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TA-65’라는 건강보조식품을 팔고 있는 미국 회사의 법정소송 공방이 기사화됐다. TA는 텔로머레이스 활성화(Telomerase Activation)의 약자다. 텔로머레이스는 염색체 말단에 있는 특정 염기서열 구조인 텔로미어를 복구하는 효소로 알려져 있다. 세포가 노화할수록 텔로미어는 짧아진다. 마침내 텔로미어가 사라지면 세포는 사멸한다. 이 때문에 텔로머레이스를 복용하면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고 따라서 세포 노화를 방지하므로 신체 노화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불로장생의 영약 아닌가.

여기서 노화의 역설(aging paradox)이 발생한다고 정 교수는 말한다. “세포가 죽어 신체가 노화한다는 이론이 맞다면, 세포를 계속 살게 해서 조직, 장기가 건강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세포가 죽지 않는다면 결국 튜머셀(tumor cell·종양세포)이 돼 버립니다.” 종양세포나 암세포는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는다. 결국 텔로머레이스를 복용해 세포를 불멸화시키려 하면 암세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수하는 얼간이’
수명 연장의 꿈은 영생을 희구하는 인간의 오랜 ‘본능’과 통한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 중 영생을 바라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다. 최근뿐만 아니라 역사시대 이래로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구는 어김없이 기록돼 왔다. 영생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올해 봄 미국에서는 영생을 이야기하는 책 두 권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하나는 영국의 철학자 스티븐 케이브의 ‘Immortality: The Quest to Live Forever and How It Drives Civilization’(불멸: 영생을 향한 탐구, 그리고 문명의 추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예일대 철학교수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2012년)다. 케이브 씨의 책이 영생이라는 주제를 정면 돌파했다면, 케이건 교수의 책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통해 영생을 측면 탐사했다.

두 저자의 영생에 대한 관점은 대체로 ‘어둡고’, 그럼으로써 죽음에 대해 ‘너그럽다’는 점에서 두 책은 닮았다.

케이브 씨는 “인간이 영생한다면 ‘장수하는 얼간이(a longevity funk)’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만약 사람이 수명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면 시간을 현명하게 쓸 테지만, 불멸한다면 시간을 그렇게 귀중하게 다룰 동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합리적으로 써야 할 이유가 없어진 사람들로 이뤄진 문명에 닥칠 결말은 처참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케이건 교수는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 매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영생을 누리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와 유사하다면 지루함의 문제가 있고, 주기적 기억상실과 중대한 인격변화를 통해 지루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삶을 사는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생은 더이상 갈망할 가치가 아니다.

케이브 씨는 “죽음(혹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그 삶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결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것은 케이건 교수가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을 통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려고 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취재를 통해 만난 과학자들은 영생에 대해 관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정지형 교수는 분자생물학자임에도 진화생물학적 관점을 드러냈다. 자신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자식을 통해서, 또 그 자손들을 통해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취지였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영원히 사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2500년 전의 공자, 부처, 2000년 전의 예수, 1500년 전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정신과 가르침을 지금도 사람들이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분자생물학자는 “우리 몸이 죽어 다 삭아 없어져서 원소로 흩어지면 이것들이 억겁(億劫)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생물을 창조하는 데 쓰이지 않을까요. 인간은 그런 식으로 영생을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이철구 교수는 칼로리 제한 요법이 수명 연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럼 그는 칼로리 제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까. “하하, 아니요, 안 해요. 저는 삶이 주는 단맛과 쓴맛을 다 맛보면서 살고 싶어요.”

자, 그럼 65자 이름을 가진 사내아이에게로 돌아가 보자. 아이의 부모가 작명가에게서 이름을 받을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이를 부를 때 꼭 이름 65자를 다 불러야지 중간에 끊거나 약자로 부르면 장수할 수 없다는 지침이었다. 아이가 다섯 살쯤 됐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와 함께 야외로 놀러 갔던 하인이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왔다. “영감마님, 큰일 났습니다. 도련님이….” “야, 이놈아 이름을 다 부르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이고, 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돌돌이 님이, 헉헉, 연못에 빠졌습니다요.” “뭐라고, 우리 귀한 아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돌돌이가 물에 빠졌다고?” “네, 김수한무….” 이런 식의 대화가 서너 번 더 진행됐다. 아이의 운명이 어찌됐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채널A 영상] 하루에 한 끼 먹으면 장수? “꼭 그런 건 아냐”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노화#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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