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답한다]‘레 미제라블’의 메시지는 불완전한 인간 보듬는 사랑

동아일보 입력 2012-12-05 03:00수정 2012-12-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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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빅토르 위고의 프랑스 소설 ‘레 미제라블’이 출간된 지 올해로 150년이 되었다. 최근 한국에서 ‘레 미제라블’의 한국어 라이선스 뮤지컬이 시작됐고, 곧 연극과 영화로도 선보인다. 이 소설이 지금도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되며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ID: zean****)
정예영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대체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작품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감정, 보편적인 생각이나 환상을 표현한다. ‘레 미제라블’은 우리의 어떤 아픔을 어루만지고 어떤 희망과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것일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가 19년을 복역한 장 발장의 이야기, 악랄한 위탁 부모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자라는 고아 코제트의 이야기도 눈물겹지만 이것이 ‘레 미제라블’의 전부는 아니다.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산업혁명으로 물질적 부가 증대되고, 1789년 대혁명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꿈에 부풀었던 사회에서 음지에 머물러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바치는 서사시이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도시가 확대되면서 소외되는 수많은 민초들을 단순히 사회 문제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한 명 한 명의 인간 존재로 그리고 있다. 이들을 통해 위고는 인간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성찰한다. 사실 이 소설은 민중뿐 아니라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대 사회의 거대한 파노라마다.

위고는 사회에 대해 순진한 낙관주의나 허무한 비관주의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인간의 조건, 인간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절대적인 ‘선(善)’의 화신인 뮈리엘 주교, 개과천선하여 불행한 자들의 수호천사가 된 장 발장, 불운한 어린 시절을 딛고 어여쁜 숙녀가 되어 사랑을 이루는 코제트, 무엇보다 작품 후반부의 배경이 되는 1832년 6월 봉기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을 품은 채 참여하는 민중은 이상적 사회, 개인적 행복에 대한 끈질긴 희망의 상징이다. 반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팡틴과 에포닌, 인간적 저열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테나르디에,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회의 어두운 양심 자베르 형사, 결국 버림받아 외롭게 죽어가는 장 발장, 6월 봉기의 실패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비참함을 나타낸다.

역사는 흐르고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열망과 노력으로 사회를 덜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는 일 외에는 길이 없다는 메시지를 이 작품은 전하고 있다. ‘레 미제라블’은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위대함을 동시에 형상화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의 깊은 공감을 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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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수많은 각색을 통해 대중에게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방대한 만큼 복합적인 이야기와 주제를 지닌 작품이다. 운명과 신에 대해,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해, 이상·절대·영원에 대한 갈망, 반대로 한없는 불행과 고통의 심연에 대해, 선악에 대해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겨울, 대중문화를 통해서만 ‘레 미제라블’을 접하기보다 2000쪽이 넘는 소설 원작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정예영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 질문은 e메일(savoring@donga.com)이나 우편(110-715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일보 문화부 ‘지성이 답한다’ 담당자 앞)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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