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우체통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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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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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담은 편지 보내고… ‘친구 칭찬하기’ 서약
대구 학남초교 “학교폭력 피해” 13% →1%로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예빈이와 진환이에게. 우리 이제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서로 괴롭히지 말고, 하루에 한 가지씩 칭찬해 주기로 하자.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자. 그러면 우린 정말 친한 친구들이 될 거야.’

대구 학남초 2학년 임나은 양이 교실 안의 우체통에 넣은 편지 내용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불리는 우체통에는 이런 글이 매일 쌓인다. 대부분 괴롭히거나 말다툼하고도 사과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편지. 아이들은 예전처럼 치고받고 싸우고 말다툼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주먹이 아니라 연필을 든다.

우체통은 4월 이 학교 모든 교실에 들어왔다. 정부가 3월에 학교폭력 1차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였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학남초에서 일진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56.6%. 대구지역 432개 초중고교 중 두 번째로 높았다. 학교폭력을 실제 당했다는 비율은 12.5%였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이 이렇게 많았던가…. 교사들은 암담했다. 학생부장인 이윤주 교사(40·여)는 “가해 학생을 나쁘다고만 치부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특히 친구를 많이 괴롭혔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였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자!

우선 저학년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처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우체통에 편지가 쌓일수록 우정도 두터워졌다. 한 학생은 “OO야, 너랑 짝꿍이 돼서 학교 오는 게 재밌어. 우리 계속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우리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다른 친구들한테도 친절하게 하자.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자”라고 다짐했다.

고학년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반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이나 따돌림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점을 찾아보게 하려는 시도. 4학년 반에서는 싫어하는 별명을 자꾸 불러 큰 싸움이 일어난 사건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토론 끝에 실천 과제를 만들고 서약서를 썼다. 친구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자, 친구에게 고운 말을 사용하자, 친구와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자….

▼ ‘친구이해’ 게임하며 대화방법도 배워요 ▼

효과는 만점이었다. 교과부가 전국 초중고교생 514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6일 발표한 학교폭력 2차 실태조사에서는 학남초의 피해율이 1.11%로 줄었다. 전국 평균은 8.5%였다.

학남초의 변화에는 교과부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1차 조사에서 학교폭력이 심각하다고 나타난 전국 313개 학교를 생활지도특별지원대상으로 정하고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8월에는 학남초 5, 6학년 학생 모두가 전문가와 집단 상담을 했다. 주제는 ‘소통과 공감으로 나의 친구 이해하기’. 자신을 소개하며 친구의 특성을 알게 하는 내용이었다. 갈등을 줄이는 대화법도 배웠다. 교사와 학부모는 따로 연수를 받았다.

5학년 학생 중 15명은 또래조정자로 뽑았다. 친구 사이의 작은 다툼이 학교폭력으로 번지지 않도록 양쪽을 달래는 역할을 한다.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이 교사에게 말했다. “작은 장난이어도 친구가 그걸 괴롭다고 느끼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교사와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고 가르쳤더니, 사소한 행위도 학교폭력이라는 사실을 학남초 어린이들은 알게 됐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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