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성하]“여긴 아날로그 시대가 끝났어”

동아일보 입력 2012-11-12 03:00수정 2012-11-12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주성하 국제부 기자
올해 말 남쪽에선 지상파 아날로그방송 시대가 완전히 끝난다. 그런데 이 때문에 가장 슬프거나 기쁠 사람은 의외로 북쪽에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북한 주민은 NTSC방식의 남쪽 신호를 잡을 수 있는 외국산 TV로 몰래 한국 방송을 시청해왔다. 북한 TV의 절대 다수는 수입산이다. 남쪽의 방송 전파는 육지로는 평양까지, 산이 없는 서해 바다 연안에선 신의주까지 간다. 남쪽 사람들은 디지털TV를 사거나 지금 사용하는 아날로그TV에 정부가 지원하는 수신장비만 달면 문제가 없지만 북한 주민은 이젠 남쪽 방송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북쪽 주민이 최신 디지털TV나 수신 장비를 구하기는 여의치 않다. 돈도 돈이지만 간첩 색출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선 이미 지난달 25일로 아날로그방송이 종료되면서 북한 강원도 주민들은 울상이라고 한다. 내년이면 지상파를 통해 한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곳은 북-중 국경 일대 지역뿐이다. 이곳 주민들도 한국 TV는 직접 볼 순 없지만 중국산 ‘MP4’(한국의 DMB 기기와 유사)나 ‘노텔’(TV 시청이 가능한 소형 노트북)을 몰래 들여와 중국 방송사들이 틀어주는 한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반면 휴전선 일대에 ‘한류’를 실시간으로 전하던 공포의 남쪽 전파를 남쪽이 알아서 중단해주니 북한 통치자들에게는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 와중에 북한 당국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짓을 벌이고 있다. 군사분계선 인근 지역 사람들이 TV로 북한 방송만 볼 수 있도록 채널을 강제로 고정해버리는 소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한국 방송을 못 보게 한다면서 TV 채널 변환장치에 봉인도장을 찍거나 납땜을 했고, 심지어 TV 리모컨까지 빼앗아갔다. 그래도 남쪽 TV 맛에 빠진 사람들은 봉인도장이나 납땜을 몰래 다시 뜯어내 한국 방송을 보다가 당국이 검열을 나오면 다시 붙여 처벌을 피해갔다. 그래서인지 북한 당국자들은 지난해부터 전혀 뜯을 수 없는 초강력접착제로 아예 채널을 영구 고정시키고 있다고 한다.

주요기사
북한 TV 방송체계는 위성으로 쏘는 중앙TV 신호를 각 지역 초단파중계소들이 받아 다시 중계하는 식이다. 지역마다 TV 주파수가 서로 다르다. 채널을 고정시켜 버리면 그 TV는 다른 지역에서는 못 쓴다. 북한에서 TV는 집에서 가장 비싼 재산이다. 어떤 TV가 있느냐에 따라 밖에서 어깨에 힘 좀 줄 수도 있고 기가 죽을 수도 있다. 한국으로 치면 자가용 승용차쯤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귀중한 재산이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바보상자’가 되는 꼴이다.

당연히 주민들이 ‘뿔’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당국도 불만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김정은 대장의 배려로 앞으로 휴전선 인근 북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유선 TV망을 설치해 더 좋은 화질로 조선중앙TV를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달래고 있다 한다. 하지만 그게 말뿐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올해 3월 한국 지역 신문이 김정일 사진을 사격표적지에 사용했다며 북한이 거세게 반발했을 때 나는 지역의 작은 신문 보도까지 체크하는 북한의 정보력에 놀랐다. 그런데 TV 채널 고정 소동을 보면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방송 종료 광고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한국 TV는 안 보고 사나? 북한의 대남 담당자들은 인터넷에서 ‘김정일’ ‘김정은’만 검색하나? 그래도 동아일보는 보겠지 싶어 한마디 해주고 싶다.

“어이구, 이 사람들아. 헛고생 그만해. 여긴 아날로그 시대가 사실상 끝났어.”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아날로그방송#북한 주민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