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속살 100km를 달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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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국제트레일런 본보 임재영 기자 완주記

2∼4일 제주에서 국내 첫 트레일런 대회인 ‘2012 제주국제트레일런’이 열렸다. 3일간 세 개의 코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며 경치를 즐긴 참가자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4일 제주에서 국내 첫 트레일런 대회인 ‘2012 제주국제트레일런’이 열렸다. 3일간 세 개의 코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며 경치를 즐긴 참가자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도로가 아닌 산이나 계곡, 들판, 사막, 정글 등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는 아웃도어 스포츠인 트레일런(Trail Run).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포장도로를 달리는 마라톤과 견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으는 스포츠다. 2∼4일 제주에서 국내 첫 트레일런 대회인 ‘2012 제주국제트레일런’이 열려 국내외 애호가 700여 명이 참가했다. 12km, 40km, 100km 3종목으로 열린 이 대회에서 100km 종목에 직접 기자가 도전해 봤다(작은 사진). 마라톤의 지구력과 등산의 근력이 필요한 경기였지만 올레길의 여유까지 느끼며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 산과 바다, 그리고 오름

1일차 20km 구간은 한라산 관음사를 출발해 정상을 거쳐 성판악휴게소까지 내려오는 등산코스. 2일 오전 8시 출발 신호와 함께 43명이 관음사 등산코스에서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하루 전 한라산에 첫눈이 내린 탓에 길이 미끄러웠지만 초겨울 설경은 장관이었다. 구상나무 숲은 눈사람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해발 1700m 이상 나무에는 상고대로 불리는 서리꽃이 만발했다.

2일차엔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해수욕장을 출발해 성산읍 광치기해변까지 해안 40km 구간을 달렸다. 사막마라톤처럼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달리는 건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점성이 높은 용암이 천천히 흐르다 바다와 만나면서 굳어진 ‘아아용암’ 바위지대에서는 칼날 같은 바위 끝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깡충깡충 뛰어야 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보랏빛 갯쑥부쟁이가 한창인 해안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3일차인 4일에는 표선면 가시리 일대 오름(작은 화산체)과 목장지대 40km 구간을 달렸다. 따라비오름(해발 342m)과 큰사슴이오름(해발 475m)을 4번씩 모두 8번을 오르내려야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코스는 진흙탕으로 변했다. 큰사슴이오름을 오르고 하천을 지나는 길에서 여러 번 미끄러지기도 했다. 몸은 힘들어도 물매화, 꽃향유가 한창 꽃을 피운 가운데 억새가 나부끼는 오름 풍경은 피곤을 잠시 씻어갔다.

○ “3일 내내 행복했다”

이 대회에는 다양한 사람이 출전했다. 대한산악연맹 오지탐사대원, 총학생회장 출마 예정 대학생, 71세의 ‘목포 유달산 사나이’, 경험 삼아 출전한 여성 마라토너,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해병대원…. 다들 사흘 내내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제한시간(하루 7시간 총 21시간) 이내 완주자는 32명으로 100km 개인별 기록은 9시간19분에서 18시간46분까지로 다양했다. 기자의 기록은 16시간23분이었다.

참가자들은 가슴을 트이게 하는 풍광은 물론이고 거친 날씨마저 즐겼다. 오지(奧地)마라토너 김순모 씨(66·경기 수원시)는 “기록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걷고, 달릴 수 있는 대회여서 특별했다”고 말했다. 일본인 가와이 요스케 씨(56)는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내년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행사를 기획한 안병식 씨(39)에게 “행복했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남극, 북극을 비롯해 세계 오지마라톤을 섭렵한 안 씨는 “내년에는 해외 러너들을 대거 초청하고 준비도 더 많이 해 참가자들에게 트레일 런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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