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법원 “한일조약 日문서 공개하라”… 과거사 판도라상자 열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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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법, 독도관련 日제안-견해 등 268건 공개 명령
한국은 7년전 전면 공개… 日 “파장 크다” 거부해와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의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일본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판결이 확정되면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 한일 현안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가 불리하다고 판단해 그동안 공개를 거부해온 정보들이 빛을 보게 돼 경우에 따라서는 한일 관계와 과거사 문제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 도쿄지방법원 민사2부(재판장 가와카미 유타카·川申裕)는 11일 일본 외무성이 한일기본조약 관련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등 한국과 일본인 11명이 낸 문서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2주 내에 항소할 수 있다.

이번 소송은 2005년 한국 정부가 한일기본조약 한국 측 문서를 전면 공개한 뒤 2006년부터 잇달아 제기된 정보공개 소송 가운데 3차로 일본 측 문서 6만 쪽 가운데 아직 공개되지 않은 23%가 대상이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향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교섭 때 일본이 불리해질 수 있다며 비공개한 154건 △한국과의 신뢰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며 비공개한 58건 △독도와 관련해 한국과의 교섭에서 불리해질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공개를 거부해온 39건 등 총 268건의 문서를 전면(212건) 또는 일부(56건)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원고가 공개를 청구한 382건의 70% 분량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공개 판결한 부분에 대해서도 “외무상이 진지하고 신속하게 재검토하기를 절실하게 바란다”며 추가 공개를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제안과 견해, 대처 방침이나 한국 측의 제안과 발언, 3국의 견해 등은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교섭에 대비해 당시의 재정사정, 경제정세나 화폐가치 등에 기초한 검토 내용이나 (배상금 등) 계산 금액에 관한 문서, 쇼와 천황(일왕)과 한국 고관과의 대화 내용, 일본에 있는 한반도 문화재에 관한 객관적 사실 등에 관한 문서도 공개 대상에 포함시켰다. 다만 한국 국민이 일본 정부로부터 멸시당한다거나 자존심이 상처 났다고 느낄 수 있는 문건은 비공개할 이유를 인정했다.

1심 판결대로 일본 정부가 한일기본조약 관련 문서를 공개하면 한일 간 각종 현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불리하다며 감춰온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원고 가운데 한 명인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이 한일조약 이후 국제사법재판소(ICJ) 얘기를 수십 년간 꺼내지 못한 이유가 공개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문서 공개가 양날의 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에 불리한 내용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내용이 최종 공개 대상에서 빠지거나 항소심에서 공개 규모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한일 시민단체가 제기했던 1차 소송에서 패해 2008년 6월 일부 문서를 먹칠한 뒤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공개된 외무성 대외비 문서에서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과 별도로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법률적 검토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시킨 이승만라인을 침범했다가 나포된 일본 어민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날 외교통상부 조태영 대변인은 “외교문서가 공개될 경우 양국 국민들이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일제피해자공제조합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 정부의 말대로 1965년 한일회담에 의해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하면 정정당당하게 지금이라도 당시 문서를 공개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한일조약#일본#문서#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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