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꽃과의 대화]계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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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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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은 캐러멜처럼 달콤한 낙엽향, 중국산은 꽃향기 은은

계수나무(위), 왼쪽부터 월계수, 금목서
계수나무(위), 왼쪽부터 월계수, 금목서
올해 한가위 보름달은 유난히도 밝았다. 미국 유인우주선의 달 착륙(1969년 7월 20일) 후 그곳에 계수나무도, 토끼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한가위 보름달만 보면 그곳 어디엔가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계수나무 한 나무…’는 윤극영 선생의 동요 ‘반달’ 가사 중 한 구절이다. 달에 사는 토끼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나 중앙아메리카 설화에도 등장한다. 심지어 1969년 아폴로 11호 승무원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기지국의 교신 내용에도 토끼 이야기가 나왔다. 기지국은 중국 설화를 인용하면서, 불사약을 훔쳐 달아난 미인(항아·姮娥)과 계수나무(‘Cinnamon Tree’, 이 나무는 향신료의 원료인 녹나무속 식물. 아마도 중국 문헌의 ‘桂’를 잘못 번역한 것인 듯함) 그늘 아래 서 있는 토끼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이런 명령에 승무원 버즈 올드린은 한가롭게도 “잘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한창 긴장된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미국인 특유의 낙천주의랄까. 아무튼 ‘달의 토끼 탐사’ 미션은 전 세계인의 웃음보를 자극했을 것이다.

○ 진짜 달나라 계수나무는 무엇?

오늘의 주제는 바로 계수나무다. 요즘 공원길을 거닐다 보면 달콤한 캐러멜 향기 비슷한 냄새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 출처가 바로 계수나무 낙엽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어라? 계수나무라면 달나라에 있다는 그 나무 아닌가? 필자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현장 견학을 하는 학생들도 어김없이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걸 본다.

그렇지만 이 계수나무(Cercidiphyllum japonicum)는 달에 있다는 그 나무와는 다르다. 키가 큰, 일본 원산의 잎떨기큰나무인데, 가장자리에 둥근 톱니가 있는 부드러운 질감의 잎을 가지고 있다. 이 나무의 일본 이름은 가쓰라(桂)다. 처음 우리나라에 들여올 때 잘못 번역되어 ‘계수나무’란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문헌에 따르면, 중국 고전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일본 원산 가쓰라가 아니라, 중국 원산의 늘푸른작은나무인 금목서(金木·Osmanthus fragrans var. aurantiacus)로 추정된다. 금색 꽃이 피는 금목서는 물푸레나뭇과의 식물로, 원산지 중국에서는 계화(桂花)나 월계(月桂)로 부르기도 한다. 금목서와 같은 종류에는 목서(흰색에 가까운 노란색 꽃)와 은목서(흰 꽃)가 있다. 중국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는 나무에 ‘계(桂)’ 자를 붙이는 전통이 있다.

○ 금목서, 은목서 꽃향기의 향연

가을 중부지방에 계수나무의 황홀한 낙엽 향이 있다면, 남부지방에는 중국 계수나무인 금목서와 은목서 꽃향기의 축복이 있다. 특히 이들의 꽃향기는 선선한 아침저녁의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전해진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은목서 꽃향기는 은은하면서도, 같은 물푸레나뭇과인 재스민류의 향처럼 상큼함이 매력적이다. 금목서 꽃향기는 진하고 달착지근하지만 결코 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부산이나 진주, 순천, 여수에 사는 분들은 중부지방 사람들이 결코 누릴 수 없는 꽃향기의 혜택을 결코 놓치지 마시라.

한편 지중해 원산의 월계수(月桂樹·Laurus nobilis)는 서양 육류요리의 비린내를 없애주는, 향신채로 이용되는 잎을 가진 나무다. 음, 달의 계수나무라…. 서양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을 상징하는 나무의 이름을 지을 때 중국인들이 달과 연관시킨 점이 흥미롭다. 아마도 그리스·로마 시대에 고귀와 승리의 상징이었던 계관(桂冠)과 중국 계수나무(명예와 숭고함을 의미)의 유사한 상징성과 나뭇잎의 모양, 그리고 둘 다 좋은 냄새가 난다는 점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인 듯하다.

덧붙이자면 향신료인 계피(桂皮)는 위의 어느 나무와도 관련이 없다. 계피는 동남아나 우리나라 등에 자생하는 녹나무(Cinnamomum)속 식물의 수피로 만든 향신료다. 상업적인 생산은 주로 스리랑카 원산의 나무를 원료로 한단다.

찬 이슬(寒露·10월 8일)이 내리며 서서히 단풍과 낙엽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계수나무의 낙엽 향기(중부지방)와, 중국 계수나무인 금목서, 은목서의 달콤한 향기(남부지방)를 느낄 수 있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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