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칼럼/신진]기본을 지키는 것이 진짜 남을 돕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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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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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신진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예쁘게 화장만 하면 뭐해. 안 보이는 데서 머문 자리를 깨끗하게 해야지.”

학교 도서관의 미화원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명색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인데 학내 화장실이 너무 더럽다고 느끼던 터였다. 역시나 아주머니들과의 대화 내내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분리수거는 바라지도 않아요, 식수대에 가래침 좀 안 뱉었으면 좋겠어. 초등학생도 알 만한 걸 대학생들이 안 지켜.”

“남학생들은 소변 보면서 아무데나 침 탁탁 뱉고,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민망하지.”

아주머니들은 한목소리로 학교가 고된 일터라고 했다. 작년 봄 전국 대학에서 시작된 청소노동자 파업 이후 몇몇 학교는 청소노동자 시급을 1년 전보다 500원 올렸다. 하지만 실질적인 노동환경이 개선된 건 아니다. 학교 시설을 이용하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 탓이 크다.

당장 도서관을 둘러봐도 아주머니들의 고충을 알 만했다. 먼저 화장실. 세면대와 거울 앞 선반은 널브러진 휴지, 치약덩어리, 화장품이 묻어 있는 솜뭉치들로 지저분했다. 좌변기 옆에는 골인에 실패한 휴지들이 습기를 머금고 바닥에 버려져 있다. ‘휴지는 변기에, 패드는 휴지통에 버려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무색했다.

남자 선배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 속 남자화장실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쓰고 난 휴지 뭉치들로 세면대와 바닥 곳곳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도서관 열람실 앞 쓰레기통도 난장판이었다. ‘일반 쓰레기, 페트병, 캔/병, 종이’로 분리수거를 하게 돼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일반 쓰레기통’에 캔이 수북했고, ‘종이 통’에는 과자 봉지와 먹다 남은 샌드위치가 버려진 채였다. 음료가 반 이상 담긴 종이컵은 ‘페트병 통’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서울 소재 다른 대학들도 찾아가 봤다. 용변 후 물을 내리지 않거나, 쓰고 난 여성용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화장실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각 대학의 열람실마다 학생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 가래침을 뱉던 학생, 휴게실에 음식물 쓰레기를 방치한 학생들이 미래의 법관, 연구원, 지도자를 꿈꾸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봄, 나는 핏대 높여 청소노동자의 인권을 토론했다. 하지만 먹고 남은 음식을 도서관 화장실에 버린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대학생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 미래 지도층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 모두 좋다. 문제는 기본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쉽게 탓하기 전에, 혹은 사회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지레 회의하기 전에,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정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대학생이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이다. 격한 몸싸움보다, 탁상공론에 그치고 마는 토론회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아주머니가 전한 어떤 남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퇴근하려고 나서는데, 웬 남학생이 도서관 복도에 엎드려 무언가를 닦고 있더란다. “학생 뭐해요? 내가 할게” 했더니 “아니요, 제가 커피를 엎질렀거든요” 하면서 열심히 치웠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덧붙였다.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지. 보통은 그렇게 남은 청소를 하다가 퇴근이 늦어지거든. 그런데 사실 그게 기본 아닌가, 자기가 남긴 쓰레기는 자기가 처리하는 것.”

끝까지 부끄러운 담소였다.

신진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청소노동자#노동환경#기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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