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바퀴벌레 트라우마

동아일보 입력 2012-08-02 03:00수정 2012-08-02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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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다습한 날씨에 개체수 크게 늘어
몸길이가 3.5∼4cm인 미국바퀴(왼쪽)와 1.3∼1.6cm인 독일바퀴. 세스코 제공
내 이름은 ‘박귀남(바퀴남)’. 수컷 바퀴벌레야. 할아버지 고향은 머나먼 아프리카지만 현재 보금자리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원룸주택. 처음 발견한 사람의 국적을 따서 독일바퀴라 불려. 나는 밤에 노는 걸 좋아해. 낮에는 주로 찬장 틈새나 침대 구석진 곳에서 쉬어. 창밖이 어둑어둑해지면 부엌이나 방으로 나와 고픈 배를 채우기 시작해. 남은 음식과 과일껍질부터 사람 머리카락이나 피부 각질까지 마구 먹어. 배가 부른데 더 맛있는 음식이 나타났다면? 토해 내고 다시 먹으면 그만이지.

최근 들어 아내와의 금실이 무척 좋아졌어. 우린 한 번의 교미로 평생 8번 정도 산란하는데 날씨가 고온다습해지면서 생식주기가 더 빨라졌거든. 덕분에 아기도 많이 생겼어. 아내는 1년에 새끼를 10만 마리나 낳아.

나를 특히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동거인 정모 씨(26·여)가 켜놓은 TV 뉴스에선 폭염이라 해서 난리지만 난 요즘처럼 습하고 찌는 무더위가 정말 좋아. 친구 바퀴벌레들 얘길 들어봐도 최근 수십 년간 중에 요즘처럼 살기 좋은 날씨는 없었대. 생큐! 북태평양고기압.

○ 공포의 ‘미국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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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스르륵.’ 유례없는 무더위 속에 바퀴벌레가 급속히 늘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더운 날이 많고 국지성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1일 해충방제전문기업 세스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바퀴벌레 개체수가 60% 정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스코는 표본지역을 정해 바퀴벌레 개체수를 모니터링한다. 온도 상승을 고려할 때 올 8월 바퀴벌레 수는 7월보다 26%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바퀴벌레의 생장주기는 높은 기온과 순간적으로 습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날씨에 더 빨라진다. 무더운 날씨에 실내에서 에어컨을 틀면 선선한 곳을 좋아하는 바퀴벌레가 더 많이 온다.

최근에는 한국에 사는 바퀴벌레의 85% 정도를 차지하는 독일바퀴보다 크기가 훨씬 크고 날기까지 하는 일명 ‘미국바퀴’가 급속히 늘고 있다. 미국바퀴는 몸길이가 3.5∼4cm로 1.3∼1.6cm인 일반 바퀴벌레보다 훨씬 크다. 미국바퀴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난다. 사람이 잡으려고 해도 겁내지 않고 오히려 깨물기도 한다. 미국바퀴는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데 도시화 이후 지하층이 있는 건물과 지하철이 늘면서 지하 배수로 등을 따라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다. 세스코 위생해충기술연구소 손영원 연구원은 “미국바퀴는 6·25전쟁 때 한국에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주로 지하배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미국바퀴는 과거엔 대형 건물 지하 등에 주로 있었으나 요즘은 일반 가정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영화 ‘연가시’ 열풍 타고 ‘꼽등이’ 공포까지

생김새가 기괴한 꼽등이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꼽등이는 생김새는 귀뚜라미와 비슷한데 덩치가 보통 3∼5cm로 크다. 습하고 물기 많은 곳을 좋아하는 꼽등이는 지난해 폭우 때 급격히 늘어났다.

게다가 꼽등이가 죽으면 그 안에 기생하던 기생충 연가시가 사람 몸속으로 파고들어 사람의 뇌를 조종해 죽게 만든다는 괴담까지 초중고교생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최근엔 이 괴담을 소재로 만든 영화 ‘연가시’도 개봉했다. 하지만 최근 갑자기 개체수가 불어나면서 주택가로 온 꼽등이는 주로 자연에서 살고 사람들에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처럼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 바퀴벌레를 비롯한 해충들이 늘어나면서 ‘바퀴벌레 공포증’이나 ‘바퀴벌레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주부 김모 씨(27·여)는 최근 마련한 신혼집에서 날갯짓하는 미국바퀴를 보고 충격을 받아 바퀴벌레 퇴치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다른 사람과 고민을 나누고 있다. 심할 경우 정신과를 찾는 사람도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병원 원장은 “바퀴벌레 공포증 같은 특정 공포증은 고대 시절 맹수나 해충에 대한 공포가 인간 기억에 남아 있거나 바퀴벌레와 얽힌 무서운 경험이 오래 남아 있어 생긴다”며 “바퀴벌레 모형이나 죽은 바퀴벌레를 멀리서 보면서 바퀴벌레가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진우 기자 uns@donga.com  
#바퀴벌레#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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