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컬처] 이지현의 아주 쉬운 예술이야기 35캐럿 다이아몬드의 여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우먼동아일보 입력 2012-07-23 10:40수정 2012-07-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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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라스케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왕녀 마르가리타’ (1653년, 캔버스에 유채, 100x128.5 cm, 빈 미술사 박물관)

서늘하고 신비롭게…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는 같은 제목의 음악을 들으며 추억에 잠기는 남자가 나옵니다. 사랑했던 여자가 이 남자에게 선물한 음반,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회상의 연결고리가 된 것이죠.
‘파반느’는 16세기에 유행했던 2박자의 느린 춤곡입니다. 그런데, 16세기에서 수백 년이 지나 완성된 라벨의 파반느는 죽은 사람을 위한 곡이어서 그런지 서늘하면서 기품 있고, 깊은 향수와 신비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라벨은 어떻게 이런 곡을 쓰게 됐을까요? 죽은 왕녀는 누구일까요? 바로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가 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한 번 볼까요?
▲ 벨라스케스 ‘푸른 드레스를 입은 왕녀 마르가리타’ (1659년, 캔버스에 유채, 107x127cm, 빈 미술사박물관)


화려함 뒤에 숨은 삶의 무게… 벨라스케스 ‘왕녀 마르가리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럭셔리한 소녀가 기품 있게 서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스페인의 공주 마르가리타로, 열다섯 살에 오스트리아 왕가와 정략결혼을 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마르가리타는 열세 살에 약혼하면서 아버지 필립 4세 국왕으로부터 35캐럿의 다이아몬드를 받았고, 외삼촌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해 네 명의 아이를 낳고 스물두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로 시집 간 마르가리타 공주는 누적된 왕가의 근친혼으로 얼굴이 흉하게 변해갔고, 왕가의 명맥을 잇기 위해 왕손을 생산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성장 사진을 찍듯, 그녀의 그림을 시기별로 그려서 오스트리아로 보냈던 벨라스케스의 눈에도 공주의 이런 비애가 느껴졌을 겁니다. 현재 시가로 200억원이 넘는 수십 캐럿의 다이아몬드를 가졌고 화려한 궁정생활을 했지만, 어린 공주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또 다른 무게와 비애를 느끼며 살았을 겁니다.
아마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라벨은 벨라스케스 그림 속 왕녀를 보며 자신이 가진 고독과 교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며 라벨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럭셔리함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왕녀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자, 안개 속을 거니는 듯한 아련한 회상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볼까요?
글·이지현(‘예술에 주술을 걸다’ 저자)

글쓴이 이지현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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