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이색 아티스트 두눈 씨 “순수함과 손톱은 비슷한 운명… 불편하단 이유로 맥없이 잘려”

동아일보 입력 2012-05-19 03:00수정 2012-05-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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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모아 작품 만드는 이색 아티스트 두눈 씨
“순수함과 손톱은 비슷한 운명… 불편하단 이유로 맥없이 잘려”
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두눈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손에 들고 웃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몸조심해라. 세균 때문에 병 걸릴지도 모른다.”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그에게 한 교수님이 건넨 말이다. 그래도 교수님은 양반이었다.

“더럽다. 가자”면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바삐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들이 떠난, 전시장에 전시된 그의 작품 앞에는 아이가 외친 “와, 손톱이다”라는 호기심 어린 탄성의 여운만이 맴돌고 있었다.

“‘더럽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진짜 세균에 감염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분도 많고요.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2005년부터 줄곧 손톱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다행히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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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예술가 두눈(본명 변득수·34) 씨가 웃으며 말했다.

○ 순수와 손톱


그는 왜 잘려 버려지는 손톱으로 작업을 할까.

“현 시대에서는 순수함과 손톱이 비슷한 운명에 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손톱이 길면 생활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잘라내잖아요. 순수한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이 사회와 시스템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순수함을 잘라내야 하니까요.”

손톱은 인간이 때가 낀, 유한한 존재임을 가시적으로 확인해 준다. 인간은 태어난 후 자라나 어른이 되며, 그 과정에서 사회의 때가 묻는다. 그렇게 살다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손끝에서 자라나는 손톱도 때가 끼면 절단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한몫했다. 휴일이면 그는 아버지의 작업장을 찾았다. 금속공예를 하시는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사포질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일’을 끝낸 후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앉을 자리가 없어 기둥을 잡고 섰다. 무심코 손으로 눈길을 돌리다 손톱 밑에 낀 검은 때를 발견했다. 손톱이 보이지 않도록 기둥을 고쳐 잡고 불편하게 서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2005년, 초등학교 무렵의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부터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왜 나는 때 낀 손톱을 부끄러워했던 것일까. 손등을 나란히 해 선생님 앞에 내밀던 위생검사시간이 생각났다. 손톱이 길거나 그 밑에 때가 끼어 있으면 자로 손등을 맞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때가 낀 긴 손톱은 불결한 것이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잘라 버려야 할 대상이 됐다. 또 동네 아이들과 흙장난을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인부들이 떠난 공사현장에서 모래를 만지고 놀다 보면 늘 손톱 아래에 때가 끼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럽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과 흙장난을 했던 기억은 버스 안에서 느꼈던 수치심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사실 손톱에 낀 때는 제가 한 노동의 부산물이고, 그것을 간직한 손톱은 제가 한 노동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죠. 그 수치심은 몸이 더러워지는 험한 일, 육체노동을 했다는 것을 감추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잘린 손톱은 두눈 작가에게 중요한 ‘오브제’(예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물건이지만 그 한 부분을 본래의 일상적인 용도에서 떼어냄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잠재된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가 됐다.

○ 해외에서 날아온 손톱들


마음에서 자라나리(위), 죽어야 사는구나(가운데), 노란 향수(아래). ‘노란 향수’는 작가의 할머니가 쓰던 호미에 한 가족의 손톱(2년 1개월간 모음)을 붙여 만들었다.
두눈 작가는 ‘기부’ 받은 손톱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친누나로부터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이 몇 개월 동안 손톱을 모아 그에게 보내준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노란 향수’에는 2년 1개월 동안 손톱을 모아 보내준 한 가족의 손톱이 재료로 사용됐다.

“‘우리 딸의 적극적인 동참이 없었다면 손톱 모으기는 실패했을지도 모른답니다. 혹시 우리 식구가 보낸 손톱만으로 1개의 작품을 만드신다면,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빠, 이걸로 정말 작품을 만든단 말이에요?’라는 딸아이의 의심을 한 방에 날려주고 싶습니다’라면서 손톱을 보내주셨더라고요.”

그는 할머니가 쓰시던 호미에 봉숭아물을 들인 그 소녀의 손톱을 붙여 작품을 만들었다.

외국에서 국제우편으로 손톱을 보내준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는 독일 우체국 소인이 찍힌 봉투 하나가 그의 작업실로 배달됐다. 그는 ‘드디어 독일 사람들의 손톱으로도 작품을 만들어보겠구나’라며 기뻐했다. 손톱을 모아준 사람도 6명이나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 유학생들이었다.

“그래도 어찌됐든 ‘독일 물’을 먹는 손톱이니까요.(웃음) 저야 너무 감사했죠.”

독일에서 날아온 봉투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체부 아저씨 감사드립니다. 내용물은 예술품 재료로 쓰일 손톱입니다. 무가치한 것에서 가치를 만들어 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예술가님한테 꼭! 전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앞서 보낸 봉투가 우편 사고로 분실돼 유학생들이 그런 메시지를 쓴 것이었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필요할 때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글을 올려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또 많은 사람이 손톱을 보내준다. 검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이 급히 필요하다고 글을 올렸더니 부산에 사는 사람으로부터 ‘익일오전특급’으로 검은색 손톱들이 배달된 적도 있다.

“보내주신 손톱에 따로 가공을 하지 않아요. 손톱은 보내주신 분들의 삶의 흔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죠.”

두눈 작가가 손톱 기부자에게 보내주는 우표(위), ‘두눈체’로 만든 글자 ‘길’(). 사진작가 나민규 씨와 두눈 작가 제공
손톱을 보내준 사람들에게는 우표를 하나씩 보내준다. 그가 2010년에 특별히 제작한 우표로, ‘마음에서 피어나리’라는 글자 옆에 무궁화가 그려져 있다. 글자 중 ‘마음’은 그가 손톱으로 만든 ‘두눈체’다.

“우표를 999개 만들었는데 아직 절반 정도 남았어요. 우표와 편지는 우리가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한 흔적들을 담고 있어요. 손톱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에 우표를 만들게 됐어요.”

그의 작업 과정은 단순한 반복이다. 기부자가 잘라 준만큼 그는 다시 붙인다. 손톱과 핀셋, 접착제만 있으면 준비가 끝난다. (작품이 완성된 다음에는 에폭시로 코팅을 한다.) 그런데 원하는 크기의 손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수북이 쌓인 손톱을 하나하나 집어 크기가 맞는지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손톱이 잘 붙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접착제를 바른 손톱이 계속 바닥에 떨어지면, 짜증이 밀려온다. 하지만 마음을 추슬러 다시 작업을 계속 이어간다.

두눈 작가가 손톱으로 작품을 만든 지도 벌써 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까지 팔린 작품은 단 두 점밖에 없다. 작품활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은근히 눈치를 준다. 특히 아버지는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돈벌이도 좀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모두가 물질에 매몰된 삶을 살아가는 때일수록, 누군가는 본질을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잊고 지내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분들이 좀 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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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두눈#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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