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급발진 악몽…” 하루 새 전화 200통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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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관합동조사단 “업무마비”

“사고 직후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도 ‘급발진’이라는 말만 계속하셨어요. 얼마나 억울하셨으면….”

회사원 최광석 씨(37)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최 씨의 아버지 최공식 씨(당시 64세)는 26년의 무사고 운전 경력을 가진 베테랑 택시 운전사였지만 차량이 갑자기 출발하는 급발진 의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현장을 찍은 블랙박스 영상에는 사고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최공식 씨는 지난해 8월 20일 광주 북구 신안동의 왕복 6차선 도로의 2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를 받고 출발한 지 몇 분 후, 갑자기 SM5 택시 차량 엔진에 굉음이 들리더니 몇 초 만에 속도가 시속 90km까지 올랐다. 급히 핸들을 돌려 앞서 가던 차량 두 대를 가까스로 피했지만 결국 버스 후미를 들이받았다. 최 씨는 모든 장기를 다쳐 10일 만에 숨졌다.

경찰은 육안 검사와 계기판 검사 등을 통해 최 씨 과실로 결론 냈다. 아들 광석 씨는 “도로에 차가 많아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가속페달을 밟고 돌진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국토해양부와 차량 제조업체에도 문의했지만 ‘급발진은 증명되지 않는다’는 말만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 피해자는 있는데 원인은 ‘불명’

차량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계속되면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급발진 정황이 뚜렷한데도 사고 후 검사에서는 운전자 과실로 결론이 나면서 “정부가 자동차 제조업체를 감싸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물론 피해자들은 자동차 업체로부터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급발진 사고는 대표적인 ‘피해자는 있는데 원인이 없는’ 사고다. 그 바람에 피해자들은 “억울해서 미치겠다”고 하소연한다. 직장인 김현숙 씨(39·여)도 아찔한 급발진 사고를 겪었다. 지난해 8월 25일 출근을 하기 위해 차를 빼려고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빌라 1층 주차장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채 기어를 후진으로 맞췄다. 문제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마자 시속 50km로 후진해 버린 것. 김 씨는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뒤에 있던 주택 담벼락과 창문을 모두 부수고서야 멈췄다”며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데 모든 급발진이 운전 부주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민관합동조사, 원인 규명은 힘들 것

지금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조사를 통해 급발진 사고를 인정한 적은 없다. 국토부는 1999년 탤런트 김수미 씨 시어머니의 교통사고사 이후 급발진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24건의 급발진 신고를 정밀 조사했지만 모두 운전자 과실로 결론을 냈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실수로 가속페달을 밟아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급발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지난해 신고 건수도 34건이나 되자 정부는 14일 급발진 피해자를 포함해 21명의 민관합동조사반을 꾸렸다. 조사 참여 신청 접수 하루 만에 20여 명이 자원했다. 조사를 담당하는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관계자는 “자신의 급발진 사고를 조사해 달라는 전화까지 포함하면 하루 200여 건의 전화가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일가족 사망 사고 직전 911에 전화해 급발진을 호소했는데도 결론은 운전자 과실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 교통부는 미국 내에서 렉서스 급발진 논란의 시작이 됐던 2009년 8월 경찰관 마크 세일러 씨 일가족 4명 급발진 사망 사고를 10개월 이상 조사한 결과 “전자장치 결함으로 발생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를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까지 동원됐지만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민관합동조사 역시 새로운 조사 기법이 개발되지 않는 한 원인 규명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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