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정화 “이분희와의 자존심 싸움 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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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7일 13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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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감독은 올해 43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동안이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현정화 감독은 올해 43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동안이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동아닷컴]

“단일팀?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두 팀이었어요. 북한팀, 남한팀, 따로였죠. 저와 이분희의 사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정화(43·KRA한국마사회) 감독은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슬아슬하다. 북한의 탁구 에이스 이분희와 현 감독은 나중에는 친한 언니-동생 사이가 됐지만, 처음 만났을 때는 날카로운 ‘라이벌’이었다.

현정화-이분희, '내가 최고' 치열했던 자존심 싸움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코리아’는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 출전한 남북 탁구 단일팀의 우승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 초반 이분희(배두나 분)와 현정화(하지원 분)는 감정 대립마저 벌인다. 현정화 감독은 “자존심 싸움이 아주 치열했다”라고 했다.

현 감독을 그녀의 자택 근방에 있는 낙지집에서 만났다. 현 감독의 남편, 그리고 강희찬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이 동석했다. 세 사람은 인터뷰 도중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거듭 술잔을 기울였다.

“이분희는 성격이 아주 까다로운 선수였어요. 당시 북한 최고의 선수였으니까요. 전 저대로 ‘내가 우리 팀 최고의 선수다, 절대 지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인터뷰 초반부터 강도 높은 멘트가 쏟아졌다. 현정화는 지금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당시 양측 선수단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현정화 감독은 이분희와의 라이벌 의식을 감추지 않았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현정화 감독은 이분희와의 라이벌 의식을 감추지 않았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북한 측에서 선수 구성도 무조건 반반을 요구했어요. 단식에 나서는 이분희 선수가 컨디션이 안 좋아도 유순복이 나가면 나갔지, 홍차옥이 나갈 수가 없었어요. 복식은 남북이 하나 된 의미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이분희 선수와 제가 뛰어야 했고요. 결국 차옥이는 대회를 못 뛴 게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았죠. 그 뒤로 우리나라가 세계선수권 우승을 못했잖아요.”

당시 현정화는 이분희와 조를 이뤄 복식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이는 급조된 것으로, 원래 현정화의 복식 파트너는 3년여간 호흡을 맞춰온 홍차옥이었다. 한국 측에서는 현-홍 조를 출전시키는 것도 고려했으나, 북한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홍 조는 이 대회 이후에도 명품 복식조로 남았다.

“저로서는 두 사람 다 장단점이 있었죠. 이분희는 그 대회 단식에서 준우승했을 만큼 개인 기량이 굉장히 좋은 선수였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 호흡을 맞추다 보니 동선 면에서 잘 맞지 않았죠. 파트너로는 홍차옥이 훨씬 편했어요. 계속 같이 뛰어온 선수였으니까.”

현 감독은 “영화에서도 이분희는 스카이서브 올리는 장면처럼 시선이 집중되는 멋진 장면이 많다”라며 “현정화는 오로지 스매시뿐이다. 백핸드로 팍 때려넣는 그런 멋진 장면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토로해 식지 않은 라이벌 의식을 드러냈다.

당시 지바 세계선수권 결승의 영웅은 유순복이었다. 이분희의 컨디션 난조로 대신 단식에 출전한 유순복은 준결승까지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덩야핑과 2위 가오준을 모두 격파하며 남북 단일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절 은퇴하게 만든 게 덩야핑이죠. 제겐 그냥 벽이었거든요. 이길 수가 없었어요. 가오준은 미국으로 가면서 친해졌는데, 덩야핑은 그때도 다가가기 힘든 선수였고 이후엔 아예 탁구계를 떠나버려서 친해질 기회가 없었죠. 베이징올림픽 때도 탁구와는 상관없는 데서 일했고.”

하지원-배두나 탁구 솜씨에 '영화 접을 뻔‘

‘코리아’는 영화 기획 단계부터 현 감독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영화다. 배두나-하지원 등 출연진은 현 감독의 지도 하에 강훈련을 소화했다. 현 감독은 “처음 둘이 탁구 치는 거 보고, 문현승 감독이 영화 접자고 했었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도저히 그림이 안 나왔어요. 선수들이 보통 하루에 5-6시간 정도 연습하는데, 배우들을 하루에 4시간씩 6개월간 연습시켰어요. 때리는 장면만 나오고 공 날아가는 장면 없어도 어떻게 들어갈지 각도를 보여주면서 연습시켰을 정도라서, 스포츠영화로서의 리얼리티는 자신있죠. 문 감독이 ‘감독님, 탁구영화 하나 찍으세요’라고 하더라구요.”

현정화-이분희 복식조의 당시 경기 모습. 사진 제공|CJ E&M
현정화-이분희 복식조의 당시 경기 모습. 사진 제공|CJ E&M


현 감독은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을 빼느라 고생했다”라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로 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그런 지적을 우려하여 삭제된 장면이 많다는 것. 현 감독이 보는 ‘코리아’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사실을 기반으로 한 탁구 영화다.

“그 대회에는 애국가 대신 아리랑을 썼잖아요. 아리랑은 노래 자체가 워낙 슬퍼요. 선수들이 아리랑 들으면서 우는 장면 같은 걸 문 감독님이 뺐거든요. 배우들도 나중에 완성된 영화 보고 ‘그 장면을 왜 뺐느냐’라고 했었는데, 지금 나오는 이야기 들어보면 문 감독님 선택이 맞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코리아’에는 김민희, 박차라, 유소라 등 현 감독이 지도하는 KRA 한국마사회 선수들도 대거 투입됐다. 일본-중국 등 상대팀 선수들로 등장, 악역을 소화한다.

“이런 영화 아니면 언제 영화배우 해보겠냐고 그랬죠.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제작진들이 감탄하고 그랬어요. 혹시 알아요? 다른 감독들 눈에 들어서 배우로 나설지.”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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