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영어 원어민 교사 철수,교육 불평등 논란 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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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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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원어민 예산지원 중단… 지자체 경제력 따른 영어교육 양극화 우려
국가영어능력평가(NEAT) 시행과 맞물려 영어사교육시장 확대 우려

《서울지역의 한 공립고는 지난해까지 1, 2학년 영어수업에서 원어민 교사 주도로 주1회 실시하던 영어회화수업을 3월 새 학기부터 사실상 포기했다. 지금 영어회화수업시간에는 한국인 영어교사가 들어와 영어대화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들려주는 듣기 중심 영어수업이 진행된다.

원어민 교사가 사라진 이유는 뭘까? 서울시교육청이 3월부터 영어 원어민 교사 인건비 예산지원을 중단하면서 원어민 교사들이 학교를 떠났기 때문이다. 원어민 교사의 빈 자리는 ‘영어로 말하는 영어수업(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 연수를 받은 이 학교의 영어교사들이 채웠지만 회화수업은 곧 벽에 부닥쳤다.

이 학교 영어교사 S 씨는 “한국인 교사의 영어회화 구사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회화수업이 제대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면서 “평소 한국어로 대화하던 한국인 교사가 회화시간에만 영어로 말하니 학생들이 어색해하면서 말을 하지 않거나 한국어로 질문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서울시교육청, 2014학년도까지 중고교 원어민 교사 예산지원 전면중단



3월 새 학기부터 서울·경기지역의 적잖은 중고교의 영어 원어민 교사가 사라지면서 영어회화수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1년 계약기간이 만료된 71개 고교의 영어 원어민 교사에 대한 인건비 예산지원을 올해 3월부터 중단했다. 올 9월부터는 시내 200개 중학교의 원어민 교사에 대한 예산지원도 중단된다. 2014학년도까지는 시교육청 예산으로 배치한 중고교 원어민 교사 지원을 모두 중단하고 한국인 영어교사로 대체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지난해까지 300개 초중고의 원어민 교사를 감축했다. 원어민 교사 지원비용을 충당하던 ‘도교육협력사업’이 중단되면서 올해 3월 전후로 재계약을 하는 영어 원어민 교사 133명에 대한 교육청의 예산지원도 중단된다.

최춘옥 서울시교육청 외국어교육담당 장학관은 “원어민 교사 1인을 채용하는데 기본급여와 주거비, 보험료, 왕복항공권 등을 포함해 연간 40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비용 대비 교육효과가 높지 않다”면서 “영어 원어민 교사가 사라지는 대신 올해 한국인 영어회화전담교사 628명을 배치 완료했고 온라인 영어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초중학교는 6월경, 고등학교는 내년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서울영어공교육강화정책 성과분석 및 발전방안’ 연구 결과에 따른 것. 이 연구에서 서울시내 초중고생 2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영어수업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교사’를 묻는 질문에 ‘회화 실력이 뛰어나고 수업을 잘하는 한국 선생님’이라고 답한 학생이 53.7%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라고 답한 응답(29.7%)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중고교는 ‘영어 원어민 교사가 사라지면 회화수업에 차질이 있어 예산이 허락된다면 원어민 교사를 유지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고교 K 교감은 “원어민 교사 수업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이 좋았지만 교육청 예산지원이 끊겨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면서 “원어민 교사가 없어지면서 영어로 진행하는 토론형태의 회화수업 비중이 줄었다”고 말했다.

적잖은 학부모들은 영어 원어민 교사 철수는 단지 영어회화를 잘 가르치는 효율성 측면만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상임대표는 “영어권 외국인을 접하면서 언어뿐 아니라 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과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와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영어말하기에 대한 거부감이 자연스레 줄어든다는 점에서 원어민 교사의 교육적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 영어 원어민 교사 예산… 금천·은평구청 0원, 강남 구청 40억

시도교육청의 영어 원어민 교사 인건비 예산 지원이 중단됐지만 서울시와 경기도의 원어민 교사 지원예산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원어민 교사를 유지하려면 각 구청이 학교에 예산을 지원해야하는 것. 하지만 구청별 재정자립도에 따라 영어 원어민 교사를 지원하는 정도에 큰 차이가 나 ‘영어교육 양극화’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지역 초중고의 경우 영어 원어민 교사 인건비 대부분을 서울시교육청 예산으로 충당하고 일부를 서울시가 지원해왔지만, 올해부터는 중고교에 대한 교육청 예산지원이 중단되는 것. 게다가 서울시 지원은 초중학교에 국한 된데다 지원금액도 지난해보다 2억1500만 원 늘어난 68억8000만 원에 불과하다.

결국 서울의 모든 고교와 많은 중학교는 구청에서 예산을 충당하지 못하면 원어민 교사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급식관련 예산이나 학교 환경개선비, 주5일제 수업 도입에 따른 예산집행 등에 따른 예산부족을 이유로 원어민 교사 예산 지원에 난색을 표한다.

서울 금천구청은 올해 교육지원팀의 학교교육지원 예산 46억 원 중 19억 원은 급식관련 비용으로, 나머지 27억 원은 학교 환경개선과 학력향상 등에 사용할 예정. 원어민 강사 예산은 없다.

은평구청도 마찬가지. 교육지원예산 35억 원 중 초등 1학년 교실에 급식도우미를 지원하는데 4억5000만 원, 냉·난방기기 청소 등 환경개선비로 5억3000만 원, 학교에 생계형 텃밭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2억 원 등이 책정되어있지만 원어민 교사 예산은 없다.

반면 서울 강남구청의 경우 지난해와 동일한 숫자의 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유지할 계획. 올해도 4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책정해 관내 모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대한 예산지원을 계속한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강남구의 경우 지난해에도 원어민 교사 인건비에 대해서는 교육청과 시의 예산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구청예산으로 충당했다.

○ “원어민 교사 철수하면 영어학원 보낼 것”

각 학교의 재정상태에 따라서도 영어 원어민 교사를 유지하는 정도에 차이가 크다. 대부분의 일반고는 예산지원이 중단되면 원어민 교사 채용을 포기하지만 대부분의 자율형사립고는 학교 자체 예산으로 올해 원어민 교사를 유지한다. 원어민 교사를 2명 이상 채용한 자율고도 있다.

학생들이 원어민을 만날 기회가 줄어듦에 따라 영어사교육비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1 자녀를 둔 서울의 한 학부모 S 씨는 “앞으로 국가영어능력평가(NEAT)가 수능 외국어영역을 대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NEAT에 포함된 ‘영어 말하기’ 능력에 미리부터 신경을 쓰는 학부모가 많다”면서 “학교에서 아이가 원어민을 만날 기회가 없어진다면 원어민 회화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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