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O2/시장, 시장 사람들]청년상인 부르고… 라디오극장 열어… 通했다

입력 2012-01-14 03:00업데이트 2012-01-14 03:5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주 남부시장 ‘이음’&경주 불국장 ‘전통문화진흥회’
전통문화진흥회가 지난해 12월 24일 경북 경주시 구정동 불국장의 라디오극장 앞 무대에서 개최한 불우이웃돕기 모금행사. 행사에 참가한 상인이 노래를 하는 동안 다른 상인이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다. 전통문화진흥회 제공
‘전통문화사랑모임’과 ‘전통문화진흥회’. 이름도 비슷한 이 두 단체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활동무대가 영호남을 대표하는 역사도시다. 현재 ‘이음’(세대와 지역을 넘어 문화와 사람을 잇는다는 의미)으로 명칭을 바꾼 전통문화사랑모임은 호남 전통문화의 중심지인 전주에, 전통문화진흥회는 영남의 대표적 역사유적지 경주에 각각 뿌리를 두고 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2008년 정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사실도 같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지역 내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화’라는 키워드를 시장에 접목하려는 목적의식마저 닮아 있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는 최근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전북 전주 남부시장과 경북 경주의 불국장을 직접 찾았다. 문화와 시장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청년들의 열정은 영하의 기온마저 잊게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시장에 청년을 심다

전주 풍남문(豊南門) 아래에 천변을 따라 자리한 남부시장은 15세기 후반에 형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상설시장화한 뒤 1968년 건물 10개동을 지어 현대화했고, 2003년 아케이드 설치 등의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시장은 점점 쇠퇴했다. 시설을 현대화했다지만 편리성은 대형마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현대화가 오히려 전통시장의 정체성만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말도 나왔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한옥마을에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데도, 시장은 이와의 연계성을 전혀 갖지 못해 도심 속 슬럼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상인의 85%가 60대 이상이다 보니 시장을 변화시키려는 의지 자체도 부족했다.

이런 남부시장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DNA였다. 특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낼 ‘청춘’의 수혈이 시급했다. 이음은 이를 간파했다. 시장에 ‘청년장사꾼’을 심는 데 우선 주력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6, 7월 청년장사꾼 아카데미를 통해 ‘예열’을 마친 이들은 8월 남부시장 1층 십자로에 ‘청년야시장’(15일간)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다. 인근 지역뿐 아니라 수도권의 청년상인들이나 대학생들에게 “시장 내 문화와 트렌드를 함께 만들자”고 설득해 전주로 끌어들인 결과였다. 당시 각지에서 모여든 50여 명의 청년상인이 30여 개 점포를 내고 한 판 축제를 벌였다. 40여 회의 문화공연과 7차례의 청년상인 워크숍이 열렸고, 밤이면 순댓집만 문을 열던 남부시장에는 주말에 최대 1500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 당연히 시장 매출액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음은 이에 힘입어 10월에도 6동 건물 2층에서 2차 야시장(4일간)을 열었고, 이 중 3개 점포(카페 나비, 캘리그래피 공방 이응, 문화기획사 아고라)는 11월 초 아예 상설로 자리를 잡았다. 김병수 이음 대표(43)는 “실험 점포를 올해 최대 20개까지 유치할 것”이라며 “전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친구들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음의 ‘청년장사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아예 전주 남부시장(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에 상설매장으로 문을 연 점포들. 위쪽은 카페 나비, 아래쪽은 캘리그래피 공방 이응이다. 이음 제공
이음의 전신인 전통문화사랑모임은 1986년 결성된 전주지역 내 전통문화인들의 순수 문화운동단체였다. 2000년대 들어 전통술박물관과 한옥체험생활관 등을 위탁 운영하게 되면서 2004년 말 사단법인화했다. 현 기업명칭은 2009년 11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이런 발자취만 보더라도 이음이 추진하는 남부시장 프로젝트의 주요 테마 중 하나가 ‘문화’라는 사실은 당연해 보인다. 이음은 △할머니공방(젊은 감각의 디자이너와 솜씨 좋은 할머니들이 오래된 물건을 리폼하는 사업) △향교문화사업(고전학교 운영, 전통혼례 사업 등) △그룹 ‘달이’(퓨전 국악공연단) 운영 등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장과 접목할 수 있는 ‘문화재료’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음의 정체성도 시장 프로젝트와 궁합이 잘 맞는다.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의 가치를 △경제의 선순환 구조 확립 △지역의 경제밸런스 회복 △영세자본의 지속가능성 확보 △사회적 시장의 발견과 개척 등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역경제의 큰 줄기였던 재래시장의 재발견은 사회적 기업에 가장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이음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맡기 수년 전부터 남부시장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서부터는 상인들과의 협력이 훨씬 원활해진 것이 사실이다. 즉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돼 계획에 머물던 사업들도 곧바로 실천할 수 있게 됐다.

○ 재래시장도 살고 전통문화도 살고


전통문화진흥회의 모체는 김수현 이사장(37)이 2005년 결성한 ‘신라소리’라는 국악예술단이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가야금을 전공한 김 이사장은 신라소리를 이끌고 보문야외상설공연장과 경주문화엑스포 등에서 국악과 양악을 접목한 퓨전음악을 연주했다. 그러나 부정기적인 공연만으로 10여 명 규모의 예술단을 꾸려가기가 쉽진 않았다. 안정된 수입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공연 및 문화행사를 기획하거나 컨설팅하는 기능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화 과정에는 김 이사장의 남편인 최광 SG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44·현 문전성시 프로젝트 불국장·외동장 PM)의 역할이 컸다.

2008년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으면서 안정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고, 2010년에는 경북에서 2번째로 전문예술법인으로 지정됐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진흥회로서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문화부가 지난해 프로젝트 대상을 5일장으로 넓히면서 진흥회가 경주지역의 불국장과 외동장을 함께 맡은 것이다.

크고 작은 공연을 다수 기획하면서 내공을 쌓았지만, 쇠퇴해가는 재래시장을 되살리는 것은 결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단발성 공연이나 이벤트로는 한계가 있었다. 기존의 상인들과 융합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유입시킬 통로를 만들어야 했다.

진흥회가 5개월간의 준비기간 끝에 지난해 11월 4일 첫선을 보인 것은 불국장의 ‘라디오극장’이었다. 극장은 ‘소통’과 ‘전통’의 의미를 함께 나타낼 수 있도록 옛 아날로그 라디오 모양으로 만들었다. 실제 라디오방송이 이뤄지는 DJ박스는 유리를 통해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설계했다. 또 전문 DJ는 물론이고 상인들도 원한다면 자유롭게 방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외동장의 경우 12월 3일 ‘그림시장’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선보였다. 컨테이너박스를 예술작품으로 꾸며 다양한 부대시설도 만들었다. 장을 보는 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방’,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도서관’, 그리고 상인들이나 장터를 찾은 사람들을 위한 ‘쉼터’ 등이 그것이었다.

최광 PM은 “프로젝트가 확정된 뒤부터 우리가 가장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시장 상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며 “기획회의를 하고 사전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5일장이 설 때마다 거의 전원이 장터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소통이 아닌 정서적, 화학적 소통을 위해 몇 개월간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불국장의 라디오극장 앞쪽 무대에 만든 ‘화목난로’도 그런 의미에서 소통의 주요 매개물이다. 일부 상인은 “먹고살기 바쁜 시장에서 무슨 문화 타령이냐”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게 엄연한 사실. 이들에게 열 마디 말로 설명하거나 수백 장의 팸플릿을 돌리는 것보다는 추운 겨울날 따뜻한 군고구마나 감자 하나를 건네면서 마음으로 다가가는 전략을 쓴 것이다.

진흥회는 시장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본연의 기업가치도 동반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주요한 전통자산 중 하나다”라며 “재래시장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전통문화를 되살릴 공간이나 기회가 더 늘어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전주,경주=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