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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구자룡]한중 20년, 엇갈리는 신호들

입력 2012-01-11 03:00업데이트 2012-01-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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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국제부 차장
1992년 8월 24일 월요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北京) 국빈관 댜오위타이(釣魚臺) 17호루(樓) 팡페이위안(芳菲苑). 당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 간의 역사적인 한중 수교 서명식은 3분 남짓에 불과했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단절된 양국 관계를 43년 만에 복원하는 데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국은 오랜 친구였던 대만과 아쉬운 단교를 해야 했고, 중국은 혈맹국 북한을 설득해야 했다. 수교 협상 예비회담의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권병현 전 주중대사는 언론 기고에서 “중국에서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항일운동을 같이한 군부와 정치국 일부 원로가 반대해 중국은 극비리에 수교 교섭을 개시하고 조기에 타결한 후 김일성에게 통고하고 중국 내 반대파에 대해서는 수교 사실을 통보하면서 각개격파식으로 승인받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비화를 전했다.

초대 주한 중국대사를 지낸 장팅옌(張庭延) 중한우호협회 부회장은 지난해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중 수교를 김일성 주석에게 통보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1992년 7월 15일 첸 외교부장을 수행해 김일성이 기다리고 있던 연풍호반 별장으로 갔을 때 김일성은 굳은 표정으로 “이미 결정됐다면 그렇게 하시지요”라며 몇 마디 하고 자리를 떠났다고 소개했다.

올해로 수교 20년을 맞은 한중은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고, 올해는 ‘한중 우호 교류의 해’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그동안 중국은 한국에는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의 교역 1위국이 되었고 양국 간에는 한 해 500만 명 이상이 오간다. 지구상의 어느 양국 관계 못지않게 인적 왕래가 잦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우호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다. 서해 중국 어민의 불법 조업과 이에 대한 한국 해경의 단속, 그리고 폭력적 저항은 언제든 충돌로 비화할 수 있다. 북한이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뤄진 후 탈북자 단속 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도 한중 관계에는 악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 밝힌 ‘신국방전략’에 따라 아시아에서 미중 간 신군비경쟁이 벌어질 전망이 나오는 것도 미중 간에서 한국의 처신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본보가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의 연구기관과 벌인 3국 국민의식 조사에서 한국인의 중국인에 대한 비호감이 2005년 24%에서 40%로 높아졌다.

장 전 대사가 “수교 초기가 한중 간 밀월 시기였다면 요즘은 부부가 살면서 토닥거리는 때라고 생각하고 격해상망(隔海相望·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의 생각으로 어려움 속에 수교했던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다시금 절실한 상황이다.

3국 국민의식 조사에서 중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44%로 비호감 17%보다 높고 한국인은 군사적 위협이 되는 국가로 북한 중국 일본 미국을 꼽았지만, 중국인들은 한국에 위협을 느낀다는 응답이 1%에 그쳤다. 양국이 우호의 단초를 찾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의 9일 중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이르면 3월부터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양국 관계에 긍정과 부정의 영향을 미칠 일들이 엇갈리고 있지만 지난 20년을 디딤돌로 보다 업그레이드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구자룡 국제부 차장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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