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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O2/Life]크리스마스 캐럴의 역사 살펴보니… 종교개혁 후 수백년간 금지

입력 2011-12-24 03:00업데이트 2011-12-2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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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은 反기독교적”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트리나 산타클로스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캐럴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2월 길거리를 수놓았던 캐럴이 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쉽게 듣기가 힘들어졌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2월 불가리아의 한 광고전문회사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2만8110명을 대상으로 ‘가장 짜증나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꼽아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다소 의외였습니다. 1위는 영국 밴드 왬(Wham)의 ‘라스트 크리스마스’(19%), 2위가 미국의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가 부른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15%)였는데요.

‘불후의 캐럴’로 불릴 만한 두 노래가 ‘짜증나는 노래’의 양대 산맥으로 지목된 이유가 뭘까요. 대다수 설문 참가자가 밝힌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 지겹다”는 것이지요. 한 참가자는 “어떤 노래라도 17만2395번을 들으면 짜증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지겹도록’ 친숙한 그 캐럴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12월만 되면 조용히 다가와 어느 순간 길거리와 상점 등을 익숙한 멜로디로 수놓는 노래. 뻔한 레퍼토리이지만 들리지 않으면 허전하고, 들리면 따라 부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노래. 주말섹션 ‘O₂’가 바로 그 캐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천사들이 캐럴을 불렀다?

‘단순하고 신나며 부드럽게 유행되는 종교적이면서 현대적인 노래.’

옥스퍼드 사전에서 말하는 캐럴(carol)에 대한 정의다. 사전적인 의미로만 봐선 감이 잘 오질 않는다.

정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선 우선 캐럴의 기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교적으로는 천사들이 최초의 캐럴을 불렀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예수가 탄생할 때 천사들이 곁에서 부른 찬양이 캐럴의 시초란 설명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론 캐럴의 기원을 고대 로마시대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2세기경 로마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그 노래가 최초의 캐럴이라는 얘기다.

어원으로 따지면 어떨까. 대체로 프랑스어 ‘carole’에서 왔다는 설과 그리스 고대언어인 헬라어 ‘choraulien’에서 왔다는 설, 두 가지로 갈린다. ‘carole’은 중세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추던 원무(圓舞)를 일컫는 말이고, ‘choraulien’은 피리 연주에 맞춰 추던 춤을 뜻한다. 배경은 다르지만 둘 다 춤과 연결된다는 게 흥미롭다.

캐럴이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는 12∼14세기 무렵. 하지만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때 이교도적인 성격이 진하다고 비난받던 캐럴은 특히 종교혁명을 기점으로 기독교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엄격하게 금지됐다.

캐럴이 부활한 건 19세기경 영국에서였다. 당시 영국엔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무렵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예수 탄생 소식을 노래로 알리는 ‘캐럴링’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캐럴은 이를 시발점으로 크리스마스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캐럴은 미국의 대중문화와 결합하며 날개를 달았다. 다양한 캐럴 음반이 발매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1942년 발표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경우 싱글 앨범으로만 5000만 장 이상 발매됐고, 세계적으로 1억 회 이상 리메이크된 걸로 알려졌다.

○ 2000년대 초까지도 인기몰이

한국 캐럴의 역사는 어떨까. 19세기 말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보급된 캐럴은 광복 이후 미국 문화가 급속도로 유입되면서 대중에게 친숙한 노래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다양한 창작 캐럴이 등장하더니 1970년대에는 당시 주류였던 포크와 록 버전의 캐럴까지 발표되면서 그 인기를 더했다. 당시 가수들은 경쟁적으로 캐럴 음반을 내놓았다. 제작비에 비해 높은 인기가 보장된 데다, 캐럴 음반 제작 여부가 정상급 가수인지를 가늠하는 척도처럼 여겨지던 분위기 때문이었다.

캐럴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인기몰이를 했다. 동요 캐럴, 코믹 캐럴까지 등장하며 12월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그 인기가 급속도로 꺾였다. 특히 창작 캐럴을 보기 힘들어졌다. 1990년대만 해도 한 해에 몇십 곡씩 새로운 캐럴이 발표됐지만 최근엔 한 해 평균 4, 5곡이 고작이다. 그마저도 연말 히트곡이나 시상식 분위기 등에 묻혀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나마 지난해 인기 가수들이 연이어 캐럴을 발표하긴 했다. 가야금과 재즈 등을 결합한 ‘퓨전 캐럴’도 관심을 끌었다.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몇 년 동안 새로운 캐럴이 나오지 않으면서 생겼을 대중의 수요를 기대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여러 곡을 수록한 음반 형태가 아닌 디지털 싱글 앨범이 보편화되면서 음반 제작 부담이 줄어든 것도 한 이유”라고 전했다.

○ 캐럴 없는 크리스마스


하지만 지난해에도 결과는 썰렁했다. 기대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올해도 캐럴이 사라졌다. 기자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에 나가 봤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지만 캐럴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커피 전문점 등에서만 간간이 들릴 뿐, 길거리는 물론이고 대다수 상점에서도 캐럴을 듣기 힘들었다. 강남역 부근에서 12년째 옷가게를 한 김성민 씨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썰렁하다. 캐럴이 들리지 않고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으니 매상 역시 크게 줄어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풍경은 서울의 종로나 명동, 신촌 등에서도 비슷하다. 22일 명동에서 행인 25명을 대상으로 지금 떠오르는 캐럴이 5개 이상 있는지 물어봤다.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캐럴 접촉 빈도를 비교해 달라고 했더니 21명이 ‘줄었다’고 답했다. 그 밖에 ‘비슷하다’와 ‘늘었다’는 각각 2명에 불과했다.

12월에 캐럴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음악 소비 형태의 변화가 첫 번째로 꼽힌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과거 카세트테이프, CD 등으로 듣던 음악을 MP3 등 디지털 기기로 듣게 되면서 길거리 노점상 등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12월이면 길거리를 가득 채운 캐럴 역시 접하기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혼자 즐기는 방식으로 음악 감상 방식이 바뀐 것도 한 요인. 주로 여럿이 함께 즐기는 데 있는 캐럴의 매력이 크게 반감됐다는 얘기다.

경기 불황으로 크리스마스나 연말 특수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그 분위기를 상징하는 캐럴 역시 설 자리를 잃었다는 설명도 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기존의 아류이거나 급조된 저질 캐럴의 등장이 대중의 실망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캐럴 시장을 얼어붙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캐럴에 대한 신뢰도가 줄어든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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