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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佛서 독립운동한 김규식 선생 ‘파리강화회의’ 당시 친필서한 발굴

입력 2011-12-12 03:00업데이트 2011-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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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국민, 日로부터 한국 독립 지지를” 호소
김규식 선생이 1919년 5월 프랑스 교육부 국장에게 보낸 편지봉투의 앞면(위 사진 왼쪽 아래)과 편지 본문(위 사진 오른쪽). 아래 사진의 앞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 사람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로 참가했던 김 선생이다.
“우리의 독립 요구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어려운 항쟁이지만 브뤼셀 국장이 보내준 지지 편지 같은 글들이 소중한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항일독립운동가 우사(尤史) 김규식 선생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민족대표로 참석했을 때 프랑스 교육부의 로베르 브뤼셀 국장에게 독립에 대한 염원과 지지를 호소하며 보냈던 친필 편지가 발견됐다.

김 선생은 “제가 만난 프랑스인들로부터 프랑스 여론이 우리나라의 독립 회복을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소망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파리강화회의 각국 대표단에 반향을 울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국민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주권을 회복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처럼 일본에서 주권을 얻어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우리 국민이 맡긴 이 막중한 사명을 제 능력과 용기로 감당해 내고 싶다”고 말했다.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의 편지는 프랑스어로 A4용지 크기의 종이를 접어 앞뒷면으로 삼아 작성됐으며 마지막에 서명을 했다. 또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했던 탄원서 사본 1부를 동봉한다는 추신도 덧붙였다.

이 서한을 발굴해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 기증한 프랑스 교육부의 시롱 장학관은 “몇 년 전 김규식 선생의 감동적인 서한을 입수했다. 파리강화회의의 프랑스 대표였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가 아시아의 상황에 좀 더 민감했더라면 한국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학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부주석까지 지내며 독립운동과 외교활동에 전념했던 김 선생은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돼 그해 12월 10일 평안북도 만포진 인근에서 서거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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