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문화재도 아닌 모명재… 中투자유치단이 찾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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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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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원병와서 귀화…明장수 두사충의 재실
대구방문단 조상묘에 헌화

19일 오전 대구를 찾은 중국 장쑤 성 롄윈강 시 정부 관계자 등이 조선으로 귀화한 명나
라 장수 두사충의 재실인 모명재를 둘러보고 있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19일 오전 대구를 찾은 중국 장쑤 성 롄윈강 시 정부 관계자 등이 조선으로 귀화한 명나 라 장수 두사충의 재실인 모명재를 둘러보고 있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19일 오전 10시경 대구 수성구 만촌2동 형제봉 아래 모명재(募明齋)에 중국 장쑤(江蘇) 성 롄윈강(連雲港) 시 관계자로 구성된 중국방문단 10여 명이 찾아왔다.

투자유치설명회를 위해 대구를 찾은 이들은 마지막 공식 방문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다. 이름 있는 문화재도 아닌 이곳을 찾은 이유는 중국인 조상인 명나라 장수 두사충(杜師忠)의 재실이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1592년) 때 원병(援兵)으로 조선에 온 두사충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귀화했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그가 처음 정착한 곳이 대구다. 이후 죽기 전 자신이 묻힐 곳을 찾아 대구 근교를 다니다 형제봉에 묘터를 잡았고, 1912년 그의 후손들이 묘지 옆에 ‘모명재’를 지어 지금까지 그를 기리고 있다.

조선인이 된 뒤에도 고향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명나라 황제에게 배례를 올린 곳을 대명단(大明壇)이라 불렀고 이는 현재 대구 남구 대명동의 유래가 됐다.

이 같은 설명을 들은 중국방문단은 모명재에서 5분 정도 떨어진 두사충의 묘를 찾아 헌화했다. 이곳에서 두사충의 13대 손인 두진락 씨(71)를 만나 중국과 대구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쉬카이신(徐開信·45) 롄윈강 시 부시장은 “처음 온 대구에서 400여 년 전 우리 조상의 재실과 후손을 만나니 대구가 형제처럼 느껴진다”며 “오래전부터 우호관계가 있었던 만큼 앞으로 대구와의 교류가 더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대구를 찾은 도학노 롄윈강 한국 상인회장(47)은 “중국이 대구에 관심을 갖는 데 모명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는 향후 양국의 다양한 분야의 교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인의 발길이 이어지자 관할구청인 대구 수성구는 두사충 장군의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과 쉼터 공간을 갖추고 모명재와 두사충의 묘를 돌아보는 ‘모명재∼영남제일관’ 누리길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총 12억 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은 내년 1월 시작된다.

이에 앞서 4일부터 대구를 찾은 중국 상하이(上海) 시, 저장(浙江) 안후이(安徽) 성 등 19개 한국상회연합회장단 20여 명도 모명재를 찾았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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