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문턱 낮췄더니… 소외계층 ‘열정-헌신’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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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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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스터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사회형평적 인재채용’ 실험

DBR 그래픽
DBR 그래픽
2006년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한난) 신입사원 공채 면접장. 공사는 학벌이나 어학 실력, 연령 등과 상관없이 저소득계층, 장애인, 사회선행자 등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사회형평적 인재채용’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면접장 열기는 여느 기업과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장애인 아들의 휠체어를 직접 밀고 온 어머니는 면접장 밖에서 직원들의 손을 붙들고 “붙든 떨어지든 여한이 없다”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지방대 출신의 다른 장애인 지원자는 “양복을 오늘 처음 입어봤다”며 “가난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아들을 지방대에 보냈다고 마음 아파하던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려 기쁘다”고 말해 면접장을 숙연하게 했다. 그의 어머니는 모처럼 날아온 아들의 면접통지서를 보고 쌈짓돈을 탈탈 털어 양복 한 벌을 장만해줬다고 했다. 몸져누운 남편과 세 아이를 부양하는 여성 지원자와 아이를 6명이나 부양하는 아버지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간홍진 한난 인사팀장은 “노동시장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소외계층 지원자들의 열정과 숨은 실력에 놀랐다”며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한난은 제도 도입 첫해 신입사원 108명 중 55명을 사회형평적 인재전형으로 선발했다. 그리고 올해로 6년째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공공기관의 채용혁신 사례로 주목을 받았고, 올해 6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유럽경영과학연구 콘퍼런스에서도 소개됐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1호(2011년 10월 15일자)는 한난의 사회형평적 인재채용 실험을 심층 분석한 사례연구를 게재했다. 다음은 내용 요약.

○‘어학 달인’ ‘스펙 쌓기 달인’이 일도 잘할까?

2005년 말 한난 경영진은 고민에 빠졌다. 2004년부터 신입사원 공채에서 학력과 연령 기준을 없앴다. 하지만 옥석을 가릴 만한 충분한 평가기준이 마땅치 않았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고학력자들의 하향 지원이 이어지면서 각종 수상경력 등 화려한 ‘스펙’과 어학 성적이 입사의 당락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난의 모든 업무에 유창한 영어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어학 실력과 스펙은 화려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나 전공 지식이 부족한 지원자들이 합격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난은 공기업으로서 해야 할 사회적 책임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비율 2%를 채우지 못해 분담금까지 물게 된 것.

김재선 한난 지원본부장은 “당시 일 잘하는 일꾼을 골라내는 공정한 평가방법을 마련하고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채용 시스템의 혁신이 시급한 과제였다”고 말했다.

○‘흙 속의 진주’를 찾아라

한난은 여러 사람의 머리를 빌려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2005년 12월부터 넉 달간 내부 직원과 국민을 대상으로 새로운 채용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총 688건의 의견을 취합해보니 “우수한 인재를 찾기 위해 소외계층에 대한 채용 문턱을 낮추자”거나 “가산점 등의 소극적인 방법보다 적극적인 채용 방식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한난은 경기 성남시 인력시장 등을 돌며 ‘취업 상비군’의 실태도 조사했다. 그 결과 소외계층을 몇 개의 군(群)으로 나눠 채용 인원을 할당하는 독특한 방식을 마련했다. 가산점 등을 주는 식의 배려를 넘어 할당에 가까운 방식으로 전체 신입사원의 절반을 사회형평적 인재로 채우겠다는 대담한 결정이었다. 당장 사내외에서 비판이 나왔다. 일각에서 “핵심 인재들만 가려 뽑아도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운 글로벌 경쟁 시대에 단지 소외계층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심 쓰듯이 사람을 뽑으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겠느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난 경영진은 “핵심 인재가 중요하지만 이들만으로 기업이 돌아가지는 않는다”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일하는 충성도 높은 직원이 틈만 나면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길 생각뿐인 고학력 직원보다 낫다”고 설득했다.

○투명한 선발절차와 인재육성 방안 디자인

조직의 문화에 맞는 인재를 뽑기 위해 채용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는 경영진의 설득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짜고 치기 위한 꼼수”라는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사회형평적 인재채용 제도의 성패가 ‘투명한 채용 제도의 설계’와 ‘채용 인원의 적응’에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난은 서류 전형과 전공 지식 및 인·적성을 판단하는 필기시험을 치르고 합격자를 대상으로 면접 전형(토론 면접과 심층 면접)을 하는 형태로 사회형평적 인재채용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토론 면접은 업무 전문성을, 심층 면접은 인성, 적성, 성실성을 평가했다. 면접 전형에서는 외부 면접위원을 대거 참여시켜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했다.

채용 이후 직원들을 위한 인재육성과 경력개발 제도도 손질했다. 사회형평적 채용자도 신체적 제약만 없다면 사업개발, 재무, 인력개발 등 회사의 주요 부서에 과감하게 배치했다. 부서 배치 이후에는 선배 직원이 전담 멘토가 돼 2년간 적응을 돕도록 했다. 직무 관련 전문교육도 단계적으로 실시했다. 입사 6개월 이후 신입사원 적응도 조사를 하고 이후 주기적으로 면담과 관찰을 해 부서배치 등에 반영하는 모니터링 제도도 마련했다.

○사회형평 인재, “업무 능력 뒤지지 않아”

회사 안팎의 사회형평적 채용 제도를 통해 입사한 직원의 업무 능력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 5주간 신입 직원 입문교육 프로그램의 1등을 비롯해 성적 상위자 5명 중 4명, 상위 10명 중 절반이 사회형평적 인재채용 출신이었다.

사회형평적 인재채용 제도가 시행되면서 조직 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성상현 동국대 교수가 분석한 결과 제도 도입 이후 자기집단 중심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이 약화됐다. 팀 간 갈등과 거리감이 줄고 인사 제도에 대한 신뢰도와 조직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졌다. 의무 고용을 해야 하는 보훈대상자도 이 제도를 통해 더 우수한 인력을 더 많이 뽑게 됐다. 장애인 의무고용 기준도 충족했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한난의 사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물론이고 인사관리 측면에서도 성과를 낸 사례”라며 “주기적인 평가를 통해 채용 인재의 배치나 경력관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1호(2011년 10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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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P ‘이해관계자 참여전략’

▼ MIT Sloan Management Review


세계적인 의류 제조 업체 갭(GAP)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종종 제3세계 현지 공장 노동자들의 저임금, 과도한 초과 근무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영진은 이해관계자를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과정의 진행 자체가 더딜 때도 많지만 이해관계자의 참여는 기업의 경제적 성과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는 갭이 이해관계자 참여 전략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갭의 사례를 통해 성공적인 이해관계 참여 전략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보다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선

▼ Harvard Business Review


금융위기와 그 여파로 불거진 기업에 대한 대중의 반감, 높은 실업률, 빈부 격차 심화 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도미니크 바턴 매킨지&컴퍼니 글로벌 회장은 이 글에서 보다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시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단기성과에 집중하는 ‘분기 자본주의’에서 장기성과에 주목하는 ‘장기 자본주의’로의 이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기유발 방식 및 조직 구조를 재편하고 직원과 협력업체, 고객, 지역사회 등 모든 주요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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