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작품 궁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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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8일 12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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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CJ E&M 제공
‘타짜’·CJ E&M 제공
허영만의 만화는 영화로도 성공했지만 강풀의 만화는 그러지 못했다. 공지영의 소설은 일단 영화화되면 화제도 모으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고(故) 박경리와 박완서의 소설은 드라마로는 제작됐지만 영화화된 것은 없다. 전문가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적합한 소설이나 만화는 따로 있지만 그 기준은 항상 변한다"고 지적했다.

● 강풀 만화는 좋은데 강풀 영화는…

만화가 강풀의 경우 최근 개봉한 '통증'을 포함해 11년간 5편의 원작이 영화로 제작돼 영화화 작품 수 최다 작가가 됐다. 하지만 5편의 영화가 동원한 관객 수는 500만에 못 미쳤다. 허영만이 '타짜'와 '식객' 두 편으로 933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박인하 교수는 "웹툰이라는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강풀 만화의 독특한 재미와 정서를 2시간 내외의 짧은 영화에서 제대로 살리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강풀의 만화는 각색이 많이 필요한 작품인데도 그동안 만들어진 영화는 스토리 위주로 압축해 보여주는 데 급급했다는 것. 박 교수는 "강풀 만화는 드라마에 더 잘 어울리는데, 강풀 드라마는 한 편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반면 허영만 만화의 경우 "2차원의 텍스트를 영상화할 때 필요한 요소를 완벽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박석환 콘텐츠비즈니스팀장은 "작품 자체가 진지하고 캐릭터가 명확하며 장소가 구체적인 데다 서민적인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 사람들의 공감을 쉽게 얻어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타짜'를 영화화한 최동훈 감독도 "원작을 보고 더 고민할 게 없었다"고 말했다.

● 공지영은 영화, 박경리는 드라마

공지영의 소설은 영화로 제작돼 많은 관객을 모았지만 드라마로 제작된 소설은 없다. 반면 박경리의 소설은 3편이 드라마로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없다. 전문가들은 "영화에 어울리는 소설과 드라마에 어울리는 소설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공지영의 소설은 사회적 의식을 담아 메시지가 뚜렷하고 이야기 전개가 단순하며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보는' 영화에 적합하다. 영화 '도가니'를 제작한 삼거리픽쳐스 배정민 PD는 "공지영 소설은 책을 읽는 동시에 머릿속에 영상이 떠오르는 시각적 매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드라마는 뜨개질이나 설거지를 하면서 편안히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작법의 기본이다(평택대 국어국문학과 김용희 교수). 소소한 사건이 이어지면서 인간, 특히 여성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는 박경리나 박완서의 소설이 드라마에 어울리는 이유다. 김 교수는 "최근 드라마들은 극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박경리 스타일의 작품이 줄고 스릴러나 추리물이 늘어나면서 소재의 제한도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후반 'B급' 정서를 가진 만화가 박인권이나 로맨스 소설가들의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 소설가 김탁환이 콘텐츠 제작사 차린 이유

콘텐츠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팔리는' 이야기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배정민 PD는 "좋다고 소문난 소설이나 만화는 거의 영화 판권 계약이 끝난 상태"라고 전했다. 보통 판권료는 5000만~1억 원. 유명 작가의 경우 1억 원 이상의 판권료에 러닝 개런티를 받기도 한다.
영상물이 흥행에 성공하면 원작의 판매도 살아난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소설 '도가니'는 영화 개봉 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소설 '완득이'도 다음 달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최근 판매량이 평소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등에 구애 없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콘텐츠 제작사들도 생겨났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태원 PD와 영화감독 김성수 추창민 황병국, 소설가 김이환 씨가 의기투합해 만든 '식스센스', 소설가 김탁환 씨가 최근 설립한 '원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출판계 인사는 "몇몇 신인 공모상의 경우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선정한다"고 귀띔했다.

은행나무 출판사 주연선 대표는 "영화계의 구애는 더 좋은 문학이 나오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소설 '새남터'를 낸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이무영 씨는 "문학 기반의 영화가 성공하는 사례가 많아지면 영화계도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병선 기자bluedot@donga.com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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