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꺾인 안현수, 러시아로 ‘날 들이밀기’

동아일보 입력 2011-08-18 03:00수정 2011-08-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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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노 3관왕 ‘쇼트트랙 황제’ 왜 러시아 귀화 선택했나
태극마크 달고 화려했던 시절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뒤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안현수. 하지만 최근 러시아 귀화를 결정하면서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는 태극마크 대신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레이스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태극마크를 달고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고 싶어요.”

2월 겨울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6)는 해맑게 웃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다시 대표팀에 선발돼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가 꾸는 꿈은 바뀌었다.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대로다. 다만 그의 가슴에 태극마크는 달려있지 않을 것이다.

○ 꺾인 날개, 날개를 바꿔 달다

안현수는 17일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러시아 귀화 의사를 밝혔다. 전날 러시아빙상연맹이 안현수를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러시아 국가대표로 뛸 수 있도록 러시아 정부에 시민권을 요청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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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러시아 대표팀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전지훈련을 하다 보니 이제야 소식을 접하고 글을 쓰게 됐다”며 “기사를 통해서 이번 일을 팬들께 알리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러시아 국적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러시아 대표팀에 들어갈 뜻을 굳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중 국적은 불가능하다.

국적법 제15조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그 외국 국적을 취득한 때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한다’고 돼 있다. 이중 국적을 허용 받으려면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경우여야 한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이중 국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런 부분들이 미흡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국적 취득을 결정하게 된 동기도 밝혔다. 그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어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 9월 러시아 대표팀 선발전 출전

안현수는 9월 16일부터 열리는 러시아 대표 선발전에 나설 계획이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선발전에 나서기 전에 러시아 국적을 얻는다고 들었다. 무난하게 선발전에서 뽑혀 러시아 대표로 뛸 것 같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국적을 취득한 뒤 1년이 지나야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2012∼2013시즌부터 러시아 대표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안현수는 러시아로 나갈 당시만 해도 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러시아행을 처음 밝혔던 4월 안기원 씨는 “일단은 러시아 무대를 경험한다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다. 귀화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랬던 안현수가 생각을 바꿔 러시아 국적 취득을 원한 것은 올림픽 출전 때문이다. 그는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한국에서 대표팀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러시아빙상연맹의 극진한 대우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안기원 씨는 “러시아에서 전담 의사와 코치 등을 붙여주며 현수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 현수가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소속팀 성남시청이 없어져 제대로 훈련에 전념할 수 없었던 그는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그는 이달 초 귀국했을 때 마음의 결정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찾아가 자신의 연금을 일시불로 찾아갔다. 이민 조건으로 4800만 원 정도다.

○ 파벌 폭로 등 한국 빙상계 미운털

안 씨는 이날 “현수가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쇼트트랙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3관왕에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 등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이와 함께 ‘투사’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녔다. 2006년 쇼트트랙계의 고질적인 파벌 문제를 폭로했다.

폭로사건 이후 그는 한국 빙상계에 미운털이 박혔다. 2008년부터 바뀐 대표선발전 개최 일정은 ‘안현수 죽이기’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2005년부터 4월, 9월 두 차례 열렸던 선발전이 2008년 1월 그가 부상을 당하자마자 4월 한 차례 개최로 바뀌었다. 팬들은 “안현수가 부상을 당하자 출전을 못하게 하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했다. 2010년 선발전이 9월로 바뀐 것에 대해서도 그는 “4월에 맞춰 훈련해 왔는데 5개월이나 뒤로 밀리면서 컨디션 조절이 힘들었다. 기초군사훈련도 받아야 하는데 당황스럽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런 투사 같은 행동에 대해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한 일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씨는 “아버지로서 아들이 국적을 버린 것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한국에서 현수가 운동에 전념하는 것은 더는 힘들다”며 “운동선수로서 잘될 수 있도록 빌어 달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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