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PEF 140곳… 해외인수는 걸음마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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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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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어’ 타이틀리스트 인수로 본 업계 실태

“우리에게도 인수 제안이 왔지만 거절했다. 해외 기업을 인수해 제대로 경영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이 윤윤수라는 걸출한 경영자를 끌어들인 점은 높이 평가하나 나중에 투자 성과를 내야 진짜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에셋사모투자전문회사(PEF·사모펀드)와 휠라코리아가 골프공 ‘타이틀리스트’로 유명한 아쿠시네트 인수에 성공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 국내 PEF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털어놨다. 그동안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로 활동한 것은 글로벌 PEF들로, 2004년부터 모습을 드러낸 토종 PEF는 자본력과 경험 부족으로 명함을 내밀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셋이 PEF의 최종 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자금 회수에까지 성공하면 토종 PEF들이 글로벌 시장을 향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 토종 PEF, 중소형 딜에서 맴돌아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등록 PEF는 4월 말 현재 164개로 투자 약정 금액만 29조 원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토종 PEF의 수는 140여 개에 이른다. 국내 시장은 PEF가 매년 30∼40개씩 늘 정도로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주 활동무대는 중소형 기업의 인수합병(M&A) 분야다. 김종훈 이큐파트너스 대표는 “PEF의 만기가 짧으면 5년, 길게는 10년 정도인데 토종 PEF가 활동한 지 5, 6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 선발주자가 투자 성과를 거둬들일 단계”라고 했다. 기업 가치로 5000억 원 이상, 주식거래가액으로 3000억 원 이상인 거래에는 글로벌 PEF나 대기업이 주된 플레이어라고 한다.

실제로 토종 PEF 가운데 투자금을 회수하고 청산한 펀드는 많지 않다. 1호 PEF였던 미래에셋PEF1호가 기계업체인 성진지오텍과 섬유업체인 신우 등에 투자한 뒤 25.9%의 수익을 남기고 청산했고, 산업은행(KDB)PEF는 2008년 1월 한라그룹과 손잡고 만도를 되사들이는 데 투자해 상장 이후 100%의 수익을 남겼다. 수도권 최대 규모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 C&M을 인수한 MBK파트너스 등은 투자금 회수가 임박했다는 관측이다.

국내에서 PEF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당시 국내 대기업들이 휘청거리자 연쇄적으로 금융회사에 큰 위기가 찾아왔고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게 글로벌 PEF였다. 쌍용증권, 서울증권, 제일은행을 글로벌 PEF가 인수해 정상화한 뒤 다른 금융회사에 팔아 2배가 넘는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론스타도 글로벌 PEF로, 하나금융지주와 맺은 매각 계약이 그대로 실행되면 약 250%의 수익을 남기게 된다. 해태제과, 하이마트, 더페이스샵, OB맥주 등이 매물로 나왔을 때도 글로벌 PEF들이 투자했고, 이들은 많게는 3배가 넘는 수익을 남겼거나 남길 것으로 보인다.

○ 토종의 한계, 글로벌 동반 진출로 뚫어야

토종 PEF들이 글로벌 및 국내 대형 투자에서 열세에 놓이는 이유는 경험과 조직, 자금조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PEF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십수 년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보고펀드의 한 관계자는 “1기 펀드 자금 중 절반을 투자한 해외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 집중해주길 바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해외자금이 펀드에 들어오는 한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자금을 대는 것을 제외하고는 해외기업 인수에는 제한이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자금을 지원하는 유한책임투자자(LP)가 몇몇 연기금으로 제한돼 있는 국내 자본력의 한계도 있다. 만일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이나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AIDA) 등 글로벌 LP의 자금을 유치하려면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에서 PEF 활동에 성공하는 등 경험도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종훈 대표는 “글로벌 PEF처럼 해외에서 역량을 발휘하려면 국내 LP의 자본력이 더 커져야 한다”며 “캘퍼스, ADIA 등으로부터 글로벌 자금을 받아오려면 토종 PEF들이 한국보다는 동북아시아로 운용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사모투자전문회사(PEF) ::


소수의 장기투자자에게서 모은 자금으로 기업이나 금융회사를 인수해 구조조정을 거쳐 가치를 높인 뒤 되팔거나 주식시장에 상장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 공모펀드와는 달리 투자 대상에 제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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