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드라마? 시청률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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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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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작으로 기획해 6회까지 방영된 MBC ‘로열패밀리’는 매일 밤샘 촬영을 하며 방
송을 내보내고 있다. 김인숙 역 염정아(왼쪽)와 한지훈 역 지성. MBC 제공
16부작으로 기획해 6회까지 방영된 MBC ‘로열패밀리’는 매일 밤샘 촬영을 하며 방 송을 내보내고 있다. 김인숙 역 염정아(왼쪽)와 한지훈 역 지성. MBC 제공
“오늘도 오전 6시까지 밤샘 촬영하다 집에 가서 씻기만 하고 바로 촬영장에 나왔어요. 오늘 내일 밤새워 촬영해야 내일 방송을 내보낼 수 있거든요.”

최근 MBC 수목드라마 ‘로열패밀리’ 촬영 현장에서 만난 주연 배우 염정아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로열패밀리는 16부작으로 아직 10회를 남겨둔 상황이지만 매일 밤샘 촬영을 하는 배우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힘든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쟁작인 SBS ‘49일’의 주인공 정일우도 16일 첫 방송 시작 전 “우리 드라마 역시 시작과 동시에 생방송 드라마가 될 확률이 높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전 제작은커녕 생방송하듯 드라마를 방영 직전까지 찍어 내보내는 한국 방송가의 관행이 최근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충분히 쉬지 못한 배우들은 부상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 배우들이 몸져눕기라도 하면 방송은 바로 펑크가 나버린다. 최근 종영한 ‘싸인’도 밤샘 촬영에 주연배우가 부상을 입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마지막 회에 컬러바 화면이 뜨는 대형 사고를 쳤다.

방송사들이 방송 사고를 무릅쓰면서까지 이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에는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 반영하는 특유의 드라마 제작 문화가 자리한다. 사전 제작할 경우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아가며 목욕신이나 전투신을 끼워 넣는 등 이른바 ‘약’을 쓸 수가 없어 시청률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것.

사전 제작 드라마들의 시청률 성적표가 시원찮은 점도 생방송 드라마를 고집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기그룹 ‘동방신기’의 멤버인 최강창민과 청춘스타 이연희가 주연한 SBS ‘파라다이스 목장’은 15일 8.4%의 시청률로 종영했다. 제작비 130억 원을 쏟아 부은 MBC ‘로드 넘버원’(2010)은 시청률 5%로 굴욕적인 퇴장을 했다.

편성이 확정되지 않은 드라마는 주연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어렵다. 한희 MBC 드라마국 부장은 “배우들이 언제 방송될지도 모르는 드라마를 위해 지금의 스케줄(광고 촬영 등 눈앞의 기회)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방송 시간에 쫓겨 찍는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 몰입을 방해하고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염정아는 “내가 맡은 배역인 김인숙은 성격 변화가 심해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데 대본이 늦게 나와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SBS 월화극 ‘마이더스’도 최완규 극본에 장혁 김희애 이민정이라는 호화 캐스팅으로 출발했으나 ‘생방송’처럼 찍는 바람에 이야기 전개가 늘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인공 장혁과 이민정이 파혼하는 ‘지엽적인’ 줄거리를 3회씩이나 끌어 “헤어지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는 비아냥거림 속에 시청률도 하락세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창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부회장(김종학프로덕션 대표)은 “드라마를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만들다 보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방송 2, 3개월 전에야 편성을 확정하고 배우 섭외에 들어가는 지금의 ‘초치기’ 제작 관행을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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